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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계절 63화 — 95만원의 두 행선지

대형 선박과 산업 항만을 배경으로 후판과 철강재의 서로 다른 출하 경로를 점검하는 현장
이 작품은 실제 철강시장 자료를 모티프로 창작한 픽션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과 일부 기업·사건은 허구이며, 실제 기업·단체·사건과 관련이 없다. 실제 기업명은 공개된 시장정보와 가격정책을 설명하기 위한 범위에서만 사용했다.

화요일 아침, 후판 가공센터의 야적장은 비슷한 두께의 철판들로 가득했지만 담당자 민호에게는 전혀 같은 재고가 아니었다. 한쪽은 조선소 납품을 전제로 준비한 물량이었고, 다른 쪽은 기계 제작업체와 일반 건설·설비 수요가가 가져갈 수 있는 범용재였다. 외관은 비슷했지만 성적서와 규격, 납품조건, 고객 승인 절차가 달랐다. 민호는 전날 밤 들어온 두 건의 문의를 나란히 놓았다.

한 건은 조선 협력업체의 추가 주문이었다. 다른 한 건은 산업설비 제작업체가 급히 요구한 소량 절단품이었다. 둘 다 후판을 찾고 있었지만 가격과 납기에서 보는 기준이 달랐다.

“같은 두께면 한쪽 재고를 돌려 쓰면 안 됩니까?” 영업담당 서윤이 물었다.

“두께만 같다고 같은 주문이 되지는 않아.” 민호가 답했다. “재질과 성적서, 절단 여유, 검사조건을 먼저 봐야 해.”

“일반 유통가격은 95만~96만원이고 수입재는 93만~94만원입니다. 숫자만 보면 차이는 크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더 조심해야지. 2만원 싸다고 다른 용도의 물건을 같은 재고로 보면 안 돼.”

민호는 주문서 끝에 고객별 사용처를 다시 적었다. 가격표에서는 후판 한 줄이지만 공장에서는 철판이 어디로 갈 것인지가 먼저였다.

수입량이 늘어도 유통창고가 넘치지 않는 이유

9월 보통강 중후판 수입량은 13만9,279톤이었다. 전월보다 13% 늘었지만 전년 같은 달보다는 28.8% 줄었다. 중국산은 7만4,424톤, 일본산은 6만4,567톤이 들어왔다. 평균 통관가격은 중국산 톤당 621달러, 일본산 667달러였다. 10월 14일 원·달러 환율 1,338.3원을 적용하면 각각 약 83만1,000원과 89만3,000원 수준이다.

서윤은 그 숫자를 계산기에 다시 넣었다.

“중국산 통관가격만 보면 국산 95만~96만원보다 꽤 낮습니다. 고객이 그 차이를 바로 묻습니다.”

품질담당 지수는 수입 성적서 파일을 넘기며 고개를 저었다.

“통관가격과 여기서 오늘 팔 수 있는 가격은 같은 숫자가 아닙니다. 하역, 운송, 검사, 규격 승인까지 더해야 해요.”

“그래도 물량이 많이 들어오면 일반 유통가격을 누르지 않습니까?”

“용도를 봐야 합니다. 중국산 수입의 상당 부분은 조선향으로 배정된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 물량이 곧바로 일반 기계업체 창고로 나오는 건 아니죠.”

원자료에서도 중국산 수입의 상당 비중이 조선향으로 추정됐다. 그래서 전체 수입량이 늘었다는 사실만으로 일반 유통재가 넘친다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였다. 통관 물량과 실제 유통 가능한 재고 사이에는 용도별 계약과 고객 승인이라는 문턱이 있었다.

조선소는 가격보다 일정표를 먼저 봤다

점심 무렵 조선 협력업체 구매담당 태현이 가공센터를 찾았다. 그는 가격보다 납기표를 먼저 꺼냈다. 선박 블록 제작 일정이 밀리지 않으려면 필요한 규격이 정해진 날짜에 도착해야 했다. 민호가 국산과 수입재 가격 차이를 설명하자 태현은 계산기를 들지 않았다.

“이번 물량을 일본산으로 바꾸면 얼마나 싸집니까?” 민호가 먼저 물었다.

“가격만 보면 차이는 있습니다.” 태현이 답했다. “하지만 승인된 규격과 검사서류가 같아야 합니다. 일정이 밀리면 차액보다 손실이 커집니다.”

“조선향 물량이 많으니 공급은 안정적이지 않습니까?”

“생산이 많다는 것과 우리 작업일에 맞는 판이 있다는 건 다릅니다. 선행 생산분이 어디에 배정돼 있는지도 봐야 합니다.”

4분기에는 포스코 광양 후판공장과 현대제철 당진의 순차 보수가 공급 변수로 거론됐다. 보수는 유통시장 공급을 줄일 수 있지만 감산 규모와 고객별 배분은 공개 자료만으로 단정할 수 없었다. 조선향 장기계약을 우선 이행하면 일반 유통재가 먼저 타이트해질 수도 있고, 반대로 실수요가 약하면 전체 가격이 쉽게 오르지 않을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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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현은 납품일을 이틀 앞당겨 달라는 대신 첫 번째 물량만 확정했다. 나머지는 선박 블록 일정이 최종 확정된 뒤 주문하기로 했다. 큰 물량을 한 번에 잡지 않아 단가 협상 여지는 줄었지만, 사용처가 정해지지 않은 재고를 떠안을 위험은 줄었다.

일반 제작업체가 선택한 것은 싼 철판이 아니었다

오후에는 산업설비 제작업체 생산관리자 소영이 전화를 걸었다. 급한 장비 프레임 제작 때문에 후판을 찾고 있었지만 주문량은 많지 않았다. 문제는 고객이 다음 주에 현장 설치를 시작한다는 점이었다.

“수입재 93만원이면 바로 잡을 수 있습니까?” 소영이 물었다.

“가격대는 그 수준이지만 필요한 규격이 오늘 절단 가능한지는 확인해야 합니다.” 서윤이 답했다.

“국산 95만원짜리는요?”

“재고는 있습니다. 대신 절단과 상차시간을 맞추면 내일 출고가 가능합니다.”

“2만원 차이라면 오늘 확정하겠습니다. 설치 인력이 잡혀 있어서 날짜를 미루기 어렵습니다.”

소영의 결정은 가장 낮은 가격을 고르는 방식이 아니었다. 공장에 도착하는 시간과 설치 인력의 대기비용까지 포함하면 더 비싼 국산재가 오히려 전체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반대로 납기가 여유로운 주문이라면 수입재를 검토할 이유가 충분했다. 후판의 경쟁력은 톤당 가격만이 아니라 고객 공정의 시간표에 따라 달라졌다.

재무담당 선우는 두 주문의 결제조건을 별도로 적었다. 조선 협력업체는 계약단가가 안정적이지만 검수와 납품절차가 길었다. 일반 제작업체는 빠르게 출고할 수 있는 대신 소량 주문과 운송비 부담이 컸다.

“같은 날 나가는 물건인데 왜 마진이 이렇게 다릅니까?” 선우가 물었다.

“한쪽은 계약과 일정이 먼저고, 다른 쪽은 재고와 속도가 먼저라서 그래.” 민호가 말했다.

“그럼 평균판매가격 하나로 보면 안 되겠군요.”

“그래. 후판을 한 품목으로 묶어도 실제 장사는 두 시장 이상으로 움직여.”

95만원의 두 행선지

저녁이 되자 천장크레인은 서로 다른 두 묶음의 후판을 옮겼다. 한 묶음은 조선 협력업체로 갈 예정이었고, 다른 한 묶음은 산업설비 제작업체로 출하 준비를 마쳤다. 비슷한 가격대의 철판이었지만 선택 기준은 전혀 달랐다. 하나는 인증과 건조 일정이 우선이었고, 다른 하나는 즉시 가공과 설치 시간이 중요했다.

민호는 당일 판매량보다 남은 재고의 용도를 다시 확인했다. 중국산 평균 통관가격 621달러, 일본산 667달러라는 숫자는 분명히 시장의 기준선이었다. 그러나 그 숫자가 곧바로 95만~96만원의 국산 유통가격을 무너뜨리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물량이 누구에게 승인돼 있고, 언제 사용할 수 있는지가 실제 거래를 결정했다.

그는 다음 주 회의자료의 첫 줄에 ‘총재고’ 대신 ‘용도별 가용재고’를 적었다. 조선향, 기계·설비향, 일반 유통향을 분리해서 보지 않으면 수입 증가와 가격 약세를 같은 의미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후판시장의 다음 방향은 수입량 하나나 정비 일정 하나가 정하지 않을 것이다. 조선향 배분, 일반 유통 주문, 규격별 재고, 실제 절단·출하량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95만원의 철판도 행선지가 다르면 다른 시장에서 거래된다. 그날 가공센터가 확인한 것은 바로 그 차이였다.

그날의 가격

품목가격비고
국산 일반재 후판 유통95만~96만원/미터톤 (약 US$644~651/쇼트톤)전주 대비 약보합
수입 일반재 후판 유통93만~94만원/미터톤 (약 US$631~637/쇼트톤)대체로 보합
9월 중국산 후판 평균 통관가격US$621/미터톤 (약 83만1,000원/미터톤·US$563/쇼트톤)전월 대비 US$82 하락
9월 일본산 후판 평균 통관가격US$667/미터톤 (약 89만3,000원/미터톤·US$605/쇼트톤)전월 대비 US$21 하락

자료: 시장, K스틸 2026년 10월 17일 주간동향모음. 9월 보통강 중후판 수입량은 13만9,279톤이며 중국산 7만4,424톤, 일본산 6만4,567톤이다. 원화 환산은 원자료에 제시된 2026년 10월 14일 환율 1달러=1,338.3원을 적용했다. 통관가격과 일반 유통가격은 거래단계·용도·규격·하역·운송·검사조건이 달라 단순 비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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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설명 — 국산 일반재 후판은 톤당 95만~96만원, 수입재는 93만~94만원 수준이지만 같은 후판이라도 조선향과 일반 유통향은 서로 다른 시장으로 움직인다. 중국·일본산 통관가격과 실제 가용재고, 납기·승인조건이 거래 판단을 어떻게 바꾸는지 가공센터의 하루로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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