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6일 (월)
누적 방문자 360,534
일일 방문자 5,390
~

[철강영업의비밀 05] 재고는 영업의 무기인가, 부채인가 — 같은 500톤의 다른 회전속도




철강 유통업체가 고객의 긴급 발주를 받았을 때 가장 믿음직한 자산은 창고에 있는 재고다. 필요한 규격을 바로 출하할 수 있다면 납기를 지키고 신규 거래처를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창고에 몇 달째 움직이지 않는 규격이 쌓이면 재고는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현금은 묶이고 보관비가 발생하며 시중 가격이 내려갈수록 매입 당시의 판단이 무거워진다. 철강 영업에서 재고는 자산이지만, 모든 재고가 같은 영업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매출을 늘리는 영업사원과 현금을 관리하는 경영자가 재고를 다르게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업사원에게 재고는 납기 대응력과 가격협상력이다. 고객이 오늘 열연이나 형강을 찾을 때 내일 공급하겠다는 약속보다 오늘 출하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강한 무기가 된다. 경영자에게는 재고를 확보하는 즉시 매입채무나 현금 유출, 금융비용과 보관공간이라는 부담이 생긴다. 어느 한쪽이 옳다기보다, 재고의 목적과 회수기간을 같은 숫자로 대조할 필요가 있다.


재고는 톤수가 아니라 ‘팔릴 확률과 시간’으로 분류해야 한다

같은 500톤이라도 구성에 따라 회사의 위험은 크게 달라진다. 일반 유통에서 반복 판매되는 범용 열연과 특정 고객의 도면·인증에 맞춘 특수 강종 후판은 재판매 가능성이 다르다. 냉연도금강판도 두께·폭·표면·도금량·용도별 승인 조건이 맞지 않으면 다른 고객에게 곧바로 판매하지 못할 수 있다. 같은 규격의 열연이라도 코일 중량과 절단 가능 폭, 밀시트, 표면 상태, 제조사 승인 여부에 따라 잠재 고객군이 달라진다.


재고를 정상 영업재고, 전략재고, 예상 수요에 선매입한 재고, 장기 체류재고, 판매가 사실상 어려운 불용재고로 구분하면 매입 의사결정이 달라진다. 정상 영업재고는 반복 주문을 위해 필요한 안전판이다. 전략재고는 특정 프로젝트나 공급 불안에 대응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보유하는 물량이다. 다만 전략재고라는 이름만 붙인다고 위험이 사라지지 않는다. 고객 주문과 사용시점이 불명확한 물량은 회사가 철강 가격의 방향에 베팅하는 포지션이 될 수 있다.


같은 500톤, 보유기간이 달라지면 수익이 뒤집힌다

다음은 실제 시세가 아닌 교육용 가상 사례다. 유통업체 두 곳이 동일한 판재류 500톤을 톤당 80만원에 매입했다고 가정한다. A사는 평균 30일 안에 판매하고 B사는 규격 미스매치와 주문 지연으로 평균 120일을 보유한다. 비교를 위해 연간 단순 자금조달비용 7%, 직접 판매비용 톤당 1만원을 가정한다. 이 수치들은 현재 시장가격이나 특정 기업의 조달금리가 아니다.


구분A: 빠르게 회전B: 장기 체류
매입 물량500톤500톤
매입단가80만원/톤80만원/톤
매입대금4억원4억원
평균 보유기간30일120일
가정 판매단가85만원/톤82만원/톤
판매가격-매입가격 차이2,500만원1,000만원
가공·물류 등 직접비500만원500만원
자금점유비용(연 7% 단리 가정)약 230만원약 921만원
단순 거래기여도약 +1,770만원약 -421만원

주: 500톤 전량의 평균 보유기간을 이용한 톤·일 기준 단순 시뮬레이션이다. 자금점유비용은 4억원×7%×평균 보유일/365로 계산했다. 고정비, 법인세, 부가가치세, 재고감모 및 실제 신용조건 등은 제외했다. B사의 낮은 판매단가는 설명을 위한 가정이지 시장 전망이 아니다.


이 사례의 핵심은 판매가격이 조금 내려갔다는 데만 있지 않다. 평균 보유기간이 네 배로 늘면서 매입에 들어간 돈을 다른 거래에 쓰지 못한 기회비용과 금융비용이 커졌다는 점이다. 출하 때 발생하는 가공·운송비가 비슷해도 장기 체류재고는 남는 이익을 잠식한다. 따라서 매입회의에서는 구매원가뿐 아니라 예상 판매고객, 정상 출하속도, 결제일, 잔여재고 처분 가능성을 한 세트로 검토해야 한다.


재고의 장부가치와 팔릴 가격도 구별해야 한다

재고가 오래됐다고 회계상 자동으로 전액 손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장부에 원가로 적혀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금액을 회수할 수 있다는 뜻도 아니다. 국제회계기준 IAS 2는 적용 대상 재고자산을 일반적으로 원가와 순실현가능가치 중 낮은 금액으로 측정하도록 한다. 순실현가능가치는 통상적 영업과정의 예상 판매가격에서 완성·판매에 필요한 예상 비용을 뺀 금액이다.


예컨대 매입원가 80만원인 규격의 실판매 가능가격이 78만원으로 내려가고 판매에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면, 재고의 회수가능성을 점검해야 한다. 다만 실제 평가손실은 품목별 예상 판매가격, 계약조건, 적용 회계기준과 비용 항목에 따라 판단하며 ‘가격이 2만원 떨어졌다’는 관찰만으로 모든 재고에 동일한 손실을 단정할 수는 없다. 철강 영업의 재고분석은 회계상 평가와 경영상 자금점유비용을 구분해야 정확하다.

ADVERTISEMENT


특히 선재·후판·냉연도금재처럼 수요가 인증이나 물성·표면 조건이 중요한 품목에서는 ‘시장에 수요가 있다’는 말보다 우리 보유 로트가 그 수요가에게 승인돼 있는가가 중요하다. 인증이 없는 제품은 같은 규격이라는 이유만으로 동일 가격에 팔기 어렵다.


창고의 총 톤수보다 유효재고가 중요하다

ERP에서 재고 1,000톤을 보여주더라도 실제 자유판매 가능한 물량은 작을 수 있다. 확정 주문으로 배정된 수량, 품질검사 또는 클레임으로 출하보류 중인 수량, 가공 예정 물량, 규격상 특정 고객 전용 물량을 제외해야 한다. ‘장부 재고’와 ‘영업에 오늘 배정할 수 있는 재고’를 분리하지 않으면 영업사원은 가용량을 과대평가하고 납기 약속을 잘못할 수 있다.


한 품목에 여러 공급사의 물량이 섞여 있을 때는 로트·강종·두께·폭·제조사·원산지·밀시트·입고일·보관상태를 함께 관리해야 한다. 특히 가공업체로 납품할 경우 코일 내경이나 단중, 형강의 규격과 길이, 후판의 인증서 등 현장 조건이 달라 동일한 '재고 톤수'로 대체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재고가 없어 놓친 매출’과 ‘재고가 남아 생긴 비용’을 같은 표에 놓아라

재고를 무조건 줄이면 좋은가. 그렇지 않다. 재고를 지나치게 줄이면 납기가 짧은 고객 주문을 경쟁사에 빼앗기고, 소량 긴급매입 때문에 오히려 조달비와 물류비가 커질 수 있다. 적정재고는 제품별 정상 수요, 공급리드타임, 공급변동성, 목표 서비스 수준을 고려해 정해야 한다. 영업부서는 결품으로 잃은 주문과 불필요하게 쌓아둔 재고의 비용을 함께 보고 판단해야 한다.


정기적으로 빠르게 판매되는 범용재에는 일정 안전재고가 필요할 수 있다. 반면 특정 도면에만 쓰이는 맞춤형 후판, 특수 표면의 도금강판, 제한된 수요가 승인품은 확정 주문·취소조건 없이 대량 선매입하지 않는 편이 합리적일 수 있다. 제품마다 동일한 ‘재고 30일 규칙’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오히려 좋은 거래를 놓치거나 위험재고를 방치한다.


장기재고 처리의 순서를 정해야 한다

재고가 장기화되면 영업회의에서 흔히 “조금 더 기다리면 가격이 오르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나온다. 그러나 보유 여부는 과거 매입단가가 아니라 앞으로의 판매가능성과 추가 보유비용에 근거해야 한다. 당장 손실을 확정하지 않겠다는 이유로 재고를 방치하면 자금부담은 계속된다.


먼저 동일·대체 용도로 쓸 수 있는 고객을 찾고, 절단·슬리팅 등 가공을 통해 판매 가능한 규격으로 바꿀 수 있는지 검토한다. 이어 창고 간 이동, 공급사와 규격 교환, 합리적 할인 처분 등을 비교한다. 가공 후 회수금액과 가공비·운송비를 정확히 계산하지 않은 채 재가공하면 손실이 커질 수 있다. 품질 의심품은 할인가격으로라도 서둘러 출하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적합성 판단과 고객 고지 기준을 확인해야 한다.


재고가 영업의 무기로 남으려면

재고를 볼 때 영업팀에는 세 가지 질문이 필요하다. 첫째, 누가 어떤 조건으로 이 제품을 살 수 있는가. 둘째, 정상적인 수요에서 이 물량은 며칠 동안 판매될 것인가. 셋째, 예상과 달리 판매가 늦어졌을 때 얼마까지의 가격·비용 손실을 감당할 수 있는가. 재무팀에는 매출채권 회수일과 매입채무 지급일을 더해 자금 회수시간을 함께 계산하는 일이 필요하다. 일반적인 현금전환주기는 재고보유일수와 매출채권 회수일수를 합한 뒤 매입채무 지급일수를 차감해 본다.


철강 영업의 경쟁력은 창고를 비우는 데 있지 않다. 고객이 실제로 필요한 재고를 적정한 시간 동안 보유하고, 필요 없는 재고를 쌓아두지 않는 데 있다. 영업에 필요한 재고는 무기지만, 판매 경로 없는 재고는 시간을 먹는 비용이다. 매입 버튼을 누르기 전에 “이 제품은 어느 고객의 어떤 공정으로, 언제, 얼마에 현금으로 돌아오는가”를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참고 자료: IFRS Foundation, IAS 2 Inventories (재고자산 평가 및 순실현가능가치); Association for Financial Professionals, Why Working Capital Is Important (현금전환주기 설명). 수치 사례는 이해를 위한 가상 계산이다.

관련 콘텐츠

철강필드북
철강필드북 관련 실무 콘텐츠 보기

ADVERTISEMENT
RECOMMENDED CONTENT
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