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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변동성이 커질 때 위기는 어떻게 시작되는가②] 빚을 내어 투자한 사람들 — 모두가 동시에 돈을 찾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시장 변동성이 커질 때 위기는 어떻게 시작되는가②] 빚을 내어 투자한 사람들 — 모두가 동시에 돈을 찾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1998년 천재들이 운영하던 펀드부터 2008년 안전한 돈의 탈출, 2022년 영국 연금시장까지. 금융시장을 무너뜨리는 것은 손실의 크기만이 아니라 ‘오늘 당장 갚아야 할 현금’이다.

경제금융소사 특별기획 ② | 2026년 11월 3일


1998년 9월 23일, 뉴욕 금융시장은 이례적인 구제 합의의 소식을 접했다. 열네 개 은행과 증권회사가 한 민간 헤지펀드에 약 36억 달러를 투입하기로 한 것이다. 그 펀드의 이름은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금융이론을 깊이 이해하고 정교한 수학모형을 활용하던 이들이 참여한 곳이었다. 그런데 이 거대한 돈이 필요했던 이유는 뜻밖에도 간단했다. 그들이 보유한 자산을 한꺼번에 팔면 시장 전체가 더 크게 흔들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역할은 흔히 알려진 것과 조금 다르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금융회사들이 협상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지만, 펀드를 살리기 위해 Fed의 돈을 직접 빌려준 것은 아니었다. 민간 금융회사들이 자기 위험으로 자본을 넣고 펀드 자산을 질서 있게 정리하도록 한 것이다. 금융회사들은 왜 다른 투자자의 실패를 자신들의 문제로 여겼을까.

맞는 계산도 빚이 너무 많으면 틀린 결과를 낸다

LTCM의 전략은 비슷한 채권 사이의 작은 가격 차이가 언젠가는 좁혀질 것이라는 판단에 기반했다. 가격 차이가 조금만 줄어도 이익이 남는 구조였다. 문제는 그 작은 이익을 크게 만들기 위해 막대한 차입을 활용했다는 점이었다. 연방준비제도 역사 자료에 따르면 1997년 말 무렵 LTCM은 자기자본 1달러당 부채가 약 30달러에 이르는 높은 레버리지를 사용하고 있었다.

레버리지라는 말은 어렵지만 원리는 쉽다. 자기 돈에 남의 돈을 보태 더 큰 자산을 움직이는 것이다. 적절하게 사용하면 투자와 사업의 속도를 높인다. 그러나 손실이 생겼을 때에는 자기자본이 훨씬 빨리 줄어든다.

이해를 위해 실제 LTCM의 재무제표와 무관한 가상 계산을 해보자. 자기 돈 100원과 빌린 돈 900원을 합쳐 1,000원어치 자산을 샀다고 가정한다. 자산값이 5%만 떨어져도 손실은 50원이다. 전체 자산에서는 5% 손실이지만 자기 돈 100원에서는 절반이 사라진다. 자산값이 10% 떨어지면 이자와 거래비용을 빼기 전부터 자기자본이 모두 소진된다.

구분가상 투자자의 재무상태의미
투자 시작자산 1,000원 / 차입금 900원 / 자기자본 100원자기자본 대비 자산 10배
자산가격 5% 하락자산 950원 / 차입금 900원 / 자기자본 50원자기자본 50% 감소
자산가격 10% 하락자산 900원 / 차입금 900원 / 자기자본 0원자기자본 소진

여기서 더 무서운 것은 손실 자체보다 대출자가 추가 담보를 요구하는 순간이다. 빌려준 쪽은 위험해진 자산을 담보로 계속 기다릴 이유가 없다. 현금을 더 넣거나, 빚을 일부 갚거나, 보유 자산을 팔라고 요구한다.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자산을 급히 팔면 가격이 더 떨어지고, 가격이 떨어지면 또 다른 투자자에게 담보 요구가 도착한다.

1998년 여름 러시아의 채무불이행과 금융시장 불안은 이 악순환을 현실로 만들었다. 투자자들은 안전한 국채로 몰렸고, LTCM이 좁혀질 것으로 기대했던 가격 차이는 오히려 벌어졌다. 연방준비제도 역사 기록에 따르면 LTCM은 1998년 8월 한 달 동안 가치의 약 44%를 잃었다. 이 펀드가 문제였던 것은 한 회사가 손실을 입어서만이 아니다. 비슷한 포지션을 보유한 금융회사들이 동시에 매도에 나설 경우 시장가격 전체가 연쇄적으로 왜곡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산은 있는데 현금은 없다 — 유동성의 역설

이쯤에서 두 단어를 구별해야 한다. ‘지급능력’은 가진 자산의 가치로 빚을 감당할 수 있느냐는 문제다. ‘유동성’은 바로 지금 지급해야 할 돈을 현금으로 낼 수 있느냐는 문제다. 둘은 서로 얽혀 있지만 같지는 않다. 자산이 충분해도 당장 팔리지 않으면 결제일을 넘길 수 있다. 반대로 현금이 잠시 있다고 해서 장기적으로 손실을 감당할 수 있다는 뜻도 아니다.

집을 한 채 가진 사람이 내일 오전까지 큰돈을 지급해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집의 감정가격이 충분히 높아도 하루 만에 적정가격으로 팔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가격을 대폭 낮춰 급매로 내놓는다. 여기서 급매가격이 새로운 시세로 받아들여지면 다른 사람의 집 담보가치까지 떨어질 수 있다. 금융시장에서는 이 장면이 몇 분 또는 몇 시간 사이에 반복되기도 한다.

이때 벌어지는 일은 단순한 자산가격 하락과 다르다. 돈을 갚기 위해 자산을 팔고, 팔기 때문에 가격이 떨어지고, 떨어진 가격 때문에 다시 돈을 갚아야 하는 순환이다. 유동성이 부족하면 원래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던 투자조차 손실을 확정한 채 끝내야 한다. 일시적인 자금난이 계속되면 결국 진짜 지급불능으로 바뀔 수도 있다.

2008년 9월, ‘현금처럼 안전한 돈’에도 사람들이 몰렸다

10년 뒤에는 다른 형태의 현금 쟁탈전이 벌어졌다. 2008년 9월 15일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바로 다음 날 대형 머니마켓펀드(MMF)인 리저브 프라이머리 펀드의 1좌당 순자산가치가 1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따르면 당시 공시된 가치는 97센트였다.

MMF는 투자자 돈을 모아 단기 국채나 기업의 단기채무증서 등 만기가 짧은 자산에 투자하는 펀드다. 일반 은행 예금과 법적 구조가 같지는 않지만, 많은 투자자가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쉽게 현금화할 수 있는 자금 보관처로 여긴다. 기업도 직원 급여나 원자재 대금 지급 전까지 잠시 운용할 돈을 이런 시장에 맡긴다.

리저브 프라이머리 펀드는 리먼브러더스 관련 채무증권 약 7억8,500만 달러를 보유하고 있었다. 예일대 금융위기 연구사례에 따르면 펀드 자산은 당시 약 625억 달러였지만, 리먼 파산 이후 투자자들의 환매 요구는 이틀 만에 400억 달러를 넘어섰다. 투자자들은 다른 사람보다 먼저 현금을 돌려받고 싶어 했다. 펀드가 보유한 단기자산을 모두 즉시 제값에 팔 수 없는 상황에서 환매는 지연됐고, 불안은 다른 펀드로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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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의 핵심은 사람들이 갑자기 손실을 좋아하지 않게 됐다는 데 있지 않다. 원래부터 손실을 원한 사람은 없었다. 다만 평소에는 누구나 필요하면 돈을 찾을 수 있다고 믿지만, 모두가 같은 날 돈을 찾으면 그 믿음을 지탱하던 거래가 멈출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기의 전염은 이런 불신의 속도에서 시작된다.

MMF가 기업의 단기채권을 사지 못하면 충격은 다시 기업으로 옮겨간다. 기업어음(CP)은 기업이 짧은 기간 자금을 빌리기 위해 발행하는 증서다. 만기가 돌아올 때 새 CP를 발행해 갚는 기업이라면, 시장이 얼어붙는 순간 자금줄이 끊길 수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2008년 10월 기업어음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한 CPFF를 마련했다. 이때의 문제가 투자자 한 사람의 손실을 넘어 기업의 정상적인 운영자금으로 이어졌다는 뜻이다.

2022년 영국에서는 ‘안전자산’ 국채가 불을 키웠다

이러한 위험은 주식이나 부실채권에만 숨어 있는 것이 아니다. 2022년 9월 영국에서는 장기 국채금리가 급등하고 국채가격이 급락하자 확정급여형 연금제도에 활용되던 부채연계투자(LDI) 전략이 압박을 받았다. 장기적으로 연금 지급 의무에 맞춰 자산을 관리하려던 금융기법이었지만, 일부 LDI 펀드는 차입과 파생상품을 사용하고 있었다.

금리가 빠르게 움직이자 거래 상대방은 더 많은 담보를 요구했다. 연금제도의 장기 부채가치도 금리 상승과 함께 줄어드는 측면이 있었지만, 그 장기적 효과와 당장 현금을 내야 하는 시간표는 달랐다. 담보 요구를 맞추기 위해 국채를 팔면 가격이 더 떨어지고, 그 결과 담보 요구가 다시 늘어나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영란은행은 금융시장 기능이 무너질 위험을 막기 위해 2022년 9월 28일 장기 영국 국채의 한시적 매입에 나섰다. 영란은행이 같은 해 12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지적한 핵심은 예상보다 빠른 가격변동에 비해 일부 펀드의 유동성 완충력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여기서도 문제가 된 것은 ‘가치가 있는가’ 못지않게 ‘지금 현금을 낼 수 있는가’였다.

창고에 코일이 가득해도 결제일의 현금은 모자랄 수 있다

금융위기가 철강산업에 전달되는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철강 유통업체는 열연 코일과 후판, 도금강판을 매입하고 창고에 보관한 뒤 가공업체나 건설업체에 판매한다. 제품이 팔려도 대금이 들어오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재고와 매출채권을 보유한 기업이라고 해서 언제나 현금이 넉넉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가상의 유통기업이 열연 코일 1,000mt를 mt당 80만원에 매입했다고 가정하자. 장부상 매입금액은 8억원이다. 이 수치는 실제 시세나 거래 사례가 아니라 자금흐름을 이해하기 위한 계산이다. 만약 이 기업에 다음 주 지급해야 할 대금이 있는 반면 판매처에서 받을 외상대금은 다음 달에 들어온다면, 재고의 가치보다 당장 쓸 수 있는 현금이 더 중요해진다.

은행이 운전자금 한도를 줄이거나 재고담보 평가를 보수적으로 바꾸면 기업은 정상적인 주문이 있어도 매입을 중단할 수 있다. 거래처에 현금 결제를 요구하고, 재고를 빨리 처분하려고 할인 판매에 나설 수도 있다. 여러 유통업체가 동시에 매물을 내놓으면 가격 하락은 더 빨라질 수 있다. 이는 특정 거래가 실제 발생했다는 뜻이 아니라 금융 충격이 철강 유통시장으로 전달되는 가능한 경로를 설명한 가상 시나리오다.

철강사에는 원료대금과 대형 설비투자 일정, 제강사에는 스크랩 매입과 전력비, 재압연사에는 반제품 매입과 제품 판매대금 회수 기간이 중요한 변수다. 수출입 트레이더에게는 신용장 개설과 결제은행의 한도, 환율 변동에 따른 증거금과 무역금융 비용까지 연결된다. 가격표 한 장만 살펴서는 이런 위험을 읽기 어렵다.

위기를 먼저 알려주는 것은 주가가 아니라 ‘돈의 시간표’다

평온할 때 기업은 얼마를 벌 수 있는지를 먼저 묻는다. 그러나 시장이 급격히 흔들리는 때에는 질문의 순서가 달라진다. 이번 주 얼마를 지급해야 하는가. 다음 주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은 얼마인가. 매출채권은 실제로 언제 회수되는가. 거래처가 결제를 미루면 버틸 수 있는 기간은 얼마나 되는가.

금융시장 전체에도 비슷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단기자금시장의 금리가 벌어지는가, 담보 인정 조건이 바뀌는가, 펀드에서 환매가 집중되는가, 시장에 나온 자산을 받아줄 매수자가 사라지는가. 국제결제은행(BIS)은 비은행 금융기관에서 담보·증거금 요구가 급격히 늘어날 때 차입 축소와 현금 확보 경쟁이 함께 벌어질 수 있다고 분석해 왔다. 이들은 각기 다른 위험처럼 보이지만 같은 자금 경색의 두 얼굴일 수 있다.

그렇다고 차입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기업의 설비투자도, 주택 구입도, 정상적인 상품거래도 적절한 신용을 필요로 한다. 문제는 미래에 들어올 돈을 믿고 오늘 지급해야 할 돈을 과도하게 늘려두는 데 있다. 수익을 기대하는 시간과 채무를 갚아야 하는 시간이 어긋나면, 시장이 잠시 멈추는 것만으로도 오래 준비한 사업이 흔들릴 수 있다.

1998년 LTCM에서 2008년 MMF, 2022년 영국 연금시장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서로 다른 금융상품을 다루지만 같은 물음을 남긴다. 자산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모두가 한꺼번에 현금을 원할 때 누가 마지막까지 기다려줄 것인가. 다음 제3부에서는 은행과 펀드, 보험사와 기업이 서로 연결된 신용의 그물망을 따라가 본다. 한 기관의 작은 균열은 어떤 길을 지나 다른 시장의 위기로 바뀌는가.

자료와 기준

역사적 사실과 수치는 공개된 1차·연구기관 자료를 교차 확인했다. 예시로 제시한 원화 계산과 철강 유통기업의 상황은 실제 시장가격 또는 특정 업체의 거래사례가 아닌 교육용 가정이다.

연방준비제도 역사자료: 1998년 LTCM 위기 · 예일대 금융위기 사례연구: 2008년 리저브 프라이머리 펀드(2025) · 미국 SEC: 2008년 MMF 가치하락 설명 · 미국 연준: 기업어음시장 지원조치(2008-10-14) · 영란은행: 2022년 12월 금융안정보고서 · 국제결제은행: 비은행 금융과 유동성·레버리지 분석


경제금융소사 관련 글: 경제금융소사에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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