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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철강무역과 관세의 역사」철은 은보다 얼마나 귀했나 — 파라오의 단검과 아시리아 상인의 장부

철은 은보다 얼마나 귀했나 — 파라오의 단검과 아시리아 상인의 장부

철은 은보다 얼마나 귀했나

파라오의 단검과 아시리아 상인의 장부


기원전 14세기, 이집트 왕 투탕카멘의 무덤에는 두 자루의 단검이 놓여 있었다. 하나는 금으로 만든 칼날이었고, 다른 하나는 철로 만든 칼날이었다. 황금 단검은 고대 왕의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보인다. 그러나 철 단검은 다른 종류의 질문을 남긴다. 그 시대에 철은 어디서 왔으며, 누가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을까.


이 칼날은 평범한 철광석을 녹여 만든 초기 철기라기보다 운석에서 온 철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2016년 성분 분석은 칼날에서 니켈 10.8중량%, 코발트 0.58중량%를 확인했고, 이 조성은 운석철의 기원을 강하게 뒷받침했다. 투탕카멘의 단검을 ‘철기시대의 대량생산품’으로 읽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 물건은 철이 널리 쓰이기 전, 하늘에서 떨어진 금속을 골라내고 두드려 다듬어 왕실의 물건으로 만든 시대를 보여준다.


여기서 첫 번째 구분이 필요하다. 철이라는 재료의 출현과 철 제련 기술의 발달, 철제품의 보급은 같은 사건이 아니다. 운석철은 금속 덩어리로 발견할 수 있지만, 철광석에서 금속을 얻으려면 다른 기술과 연료, 숙련된 작업이 필요하다. 철광석을 다루는 기술이 알려졌다고 해서 곧바로 철제 농기구와 무기가 사회 전체에 퍼지는 것도 아니다. 고고학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청동기에서 철기로 넘어가는 단일한 순간이 아니라, 지역마다 속도가 달랐던 긴 전환이다.


투탕카멘의 단검이 귀중했던 배경에는 외교도 있었다. 아마르나 문서에 남은 미탄니 왕 투슈라타의 편지와 선물 목록은 철제 단검과 금도금 철 팔찌 같은 철 물품이 왕실 간 교환의 대상이었음을 전한다. 후기 청동기 시대의 국제관계에서 선물은 단순한 호의가 아니었다. 왕들은 금, 은, 말, 전차, 귀금속과 희귀한 물품을 주고받으며 동맹과 위신을 확인했다. 철은 이 교환망에서 아직 일상재가 아니라 특별한 가치를 가진 물건이었다.


다만 아마르나 문서의 철제 선물을 투탕카멘의 단검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문서는 당시 철이 외교 선물의 범주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줄 뿐, 특정 유물의 이동 경로까지 증명하지 않는다. 역사 서술에서는 비슷한 시대의 두 증거를 연결하되, 연결이 확인된 사실인지 정황에 근거한 해석인지를 나누어야 한다.


왕실 선물만으로 철의 이동을 설명할 수는 없다. 상인들의 기록을 들여다보면 다른 장면이 나타난다. 오늘날 튀르키예 중부의 퀼테페, 고대 카네시에서 발견된 고아시리아 상인들의 점토판 문서다. 기원전 2천년기 초, 아시리아 상인들은 아나톨리아와 메소포타미아를 잇는 장거리 교역망을 운영했다. 그들의 장부와 서신에는 주석과 직물, 은과 금속의 거래뿐 아니라 철로 해석되는 여러 명칭도 등장한다.


철의 고대 명칭을 오늘날의 재료 분류와 정확히 일치시키기는 쉽지 않다. 퀼테페 문서의 amūtum, ašium, parzillum 같은 말이 운석철인지, 제련철인지, 혹은 철을 포함한 광물까지 가리키는지 연구자 사이에 논쟁이 이어져 왔다. 언어의 흔적은 남았지만 당시 사람들이 그 이름으로 구분한 재료가 현대의 ‘철’과 정확히 겹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문맥과 물성, 고고학 자료를 함께 검토한다.


2019년 고아시리아 금속 교역 연구는 퀼테페 문서 약 200건에서 철 관련 용어가 확인된다고 정리했다. 문서에 기록된 양은 합계 30미나, 약 15kg을 넘지만, 같은 물량이 여러 기록에 중복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어 이를 교역 총량이나 연간 물량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이 기록이 말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철은 왕실 무덤에서만 발견되는 신비한 금속이 아니었다. 상인들은 그것을 계량하고, 가격을 매기고, 다른 금속과 함께 거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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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가격이다. 일부 문서에서 철 1셰켈의 가격은 은 11과 3분의 2셰켈에서 140셰켈까지 큰 폭으로 나타난다. 철의 종류와 순도, 형태가 달랐을 수 있고, 기록된 거래의 맥락도 서로 같지 않다. 따라서 이 범위를 하나의 시장가격으로 평균 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 오히려 가격이 크게 갈라졌다는 사실은 ‘철’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 다른 품질과 희소성, 용도가 묶여 있었음을 보여준다.


철은 작은 조각, 덩어리, 돌처럼 묘사된 원료, 불순물이 섞인 철 등 여러 형태로 기록됐다. 완제품 가운데에는 반지와 장식품이 눈에 띈다. 철 반지에 금을 둘러 장식했다는 기록도 있다. 오늘날에는 금과 철의 가치가 당연히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희귀한 철에 금을 더해 그 특별함을 드러냈을 가능성이 있다. 퀼테페 유적에서 철제 무기가 대량으로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도 이 시기의 철을 전쟁용 무기 소재로만 상상하지 않게 한다.


이 기록 속 상인은 철을 팔아 은을 얻는 데서 거래를 끝내지 않을 수 있었다. 연구자들이 복원한 한 사업 사례에서는 철을 아나톨리아에서 구해 다른 금속 거래와 연결하고, 결국 은을 회수하는 과정이 여러 문서에 나뉘어 나타난다. 거래가 한 번의 매매가 아니라 자금과 신용, 동업자, 운송 위험이 얽힌 연쇄였다는 뜻이다. 점토판은 영웅의 모험담을 들려주지 않는다. 대신 돈을 빌리고, 물건을 맡기고, 책임을 다투는 상업의 흔적을 남긴다.


이 기록에는 오늘날 관세사를 공부하는 독자에게도 낯익은 질문이 숨어 있다. 상인이 철을 사고팔 때 그 물량은 누구의 통제를 받았을까. 같은 연구는 아시리아 시 당국이 처음에는 아슈르에서, 뒤에는 카네시의 상인 거점인 카룸의 당국이 철 거래에 10%의 십일조 성격 부담금(išrātum)을 부과한 기록을 소개한다. 반대로 시의회는 시청에서 직접 구매한 철과 아카드 직물에 대해 일부 부담금을 매기지 않도록 지시한 문서도 남겼다. 철은 상인의 상품이면서 동시에 과세와 면제의 대상이었다. 부담의 기준과 권한이 거래 경로와 구매 상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자료를 근대 관세의 탄생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오늘날의 국경선·세관·법정 세율 체계가 그대로 존재했던 것은 아니며, 여기서 확인되는 것은 도시국가와 상인 거점이 거래를 감독하고 특정 금속에 부담금을 부과하거나 면제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기록은 관세의 역사를 철 무역의 역사와 함께 읽어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철이 이동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권력은 그 흐름에 무관심하지 않았다.


이때 철의 이동을 곧바로 근대적 의미의 ‘자유무역’이나 ‘관세 없는 교역’으로 부르면 안 된다. 고대 국가와 도시에는 통행료, 항만 부담금, 조공, 공납과 같은 여러 부담과 통제 방식이 존재했다. 다만 오늘날의 관세처럼 국경을 넘는 상품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법률·행정 체계와, 고대의 통행·조공·도시별 부담은 같은 제도가 아니다. 이 연재는 관세가 없던 시대를 상정하는 대신, 근대적 관세제도가 성립하기 전 철이 어떤 경로와 권력관계 속에서 이동했는지를 먼저 살펴본다.


그 차이는 중요하다. 훗날 관세는 국가가 국경에서 세율을 정해 징수하고, 국내 생산자와 수입품의 경쟁 조건을 바꾸는 제도가 된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앞선 시대에도 철의 이동은 왕의 선물, 상인의 계약, 도시의 통제, 광산과 생산기술에 대한 접근권에 좌우됐다. 철을 가진다는 것은 단지 금속을 소유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누가 생산지를 통제하고, 누가 운송로를 열며, 누가 희귀한 기술과 물자를 먼저 확보하는가의 문제였다.


투탕카멘의 단검과 퀼테페의 장부는 서로 다른 세계를 비춘다. 하나는 왕실의 외교와 위신을, 다른 하나는 상인의 가격과 위험을 보여준다. 두 증거를 함께 놓으면 철의 초기 역사는 신비한 발명담에서 교역의 역사로 옮겨온다. 철은 처음부터 대량으로 세계를 바꾼 금속이 아니었다. 희귀한 물건이 왕의 손에 들어가고, 작은 물량이 장거리 거래망을 통과하며, 그 가치와 쓰임을 두고 사람들이 협상했던 금속이었다.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아시리아 제국으로 이어진다. 상인의 장부에 기록된 철과 제국의 창고·조공·전리품으로 모인 철은 같은 흐름이었을까. 제국은 철을 어떻게 모으고 배분했으며, 그 통제는 상업과 어떤 관계를 맺었을까. 고대 철 교역의 다음 장면에서는 시장과 국가권력이 만나는 경계선을 살펴본다.


참고자료

  1. A. S. Yener 외, “The Innovation and Adoption of Iron in the Ancient Near East,” Journal of Archaeological Research (2020). https://doi.org/10.1007/s10814-019-09129-6
  2. Gojko Barjamovic, “Old Assyrian Metal Trade, its Volume and Interactions,” Belleten 83(298), 2019. https://belleten.gov.tr/tam-metin/398/eng
  3. Comelli et al., “The meteoritic origin of Tutankhamun's iron dagger blade,” Meteoritics & Planetary Science (2016). https://onlinelibrary.wiley.com/doi/full/10.1111/maps.12664
  4. University of Chicago, Institute for the Study of Ancient Cultures, “Amarna Letters” 자료. https://isac.uchicago.edu/sites/default/files/uploads/shared/docs/Membership/Mitanni%20Letter.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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