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기업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것을 잃는다. 그러나 상실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어떻게 다음 선택을 바꾸느냐이다.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과 철강업의 불황·재고·거래 경험을 통해 실패를 경영 자산으로 바꾸는 지혜를 돌아본다.

살다 보면 우리는 참 많은 것을 잃는다.
젊은 날에는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이 큰일인 줄 알았다. 지갑을 잃고, 열쇠를 잃고, 중요한 서류를 잃어버리면 세상이 무너진 듯 마음이 급해졌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알게 된다. 정말 아픈 상실은 손에 잡히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직장을 떠나고, 오랫동안 거래하던 거래처를 잃고, 함께 일하던 동료와 헤어진다. 어느 날은 사업에서 돈을 잃고, 또 어느 날은 평생 쌓아온 명성과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 세월이 더 흐르면 건강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는 일도 겪게 된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하나씩 얻어가는 과정인 동시에 하나씩 내려놓는 과정인지 모른다.
철강업도 다르지 않다.
30년 넘게 철강시장을 바라보면서 수없이 많은 부침을 보았다. 가격이 오를 때는 영원히 오를 것 같았고, 수요가 넘칠 때는 설비를 더 늘리지 못해 안달했다. 그러나 시장의 계절은 사람의 욕심과 상관없이 바뀐다.
잘나가던 품목이 적자로 돌아서고, 든든했던 거래처가 사라지고, 한때 효자였던 설비가 어느 순간 비용만 잡아먹는 짐이 되기도 한다. 높은 가격에 사들인 재고가 시황 급락과 함께 손실로 변하는 광경도 수없이 반복됐다.
그 순간 경영자는 묻는다.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가.”
하지만 더 중요한 질문은 그 다음에 있다.
“이 상실이 우리에게 무엇을 보게 했는가.”
영국의 세균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1928년 연구실에서 배양하던 세균 배지에 우연히 곰팡이가 자란 것을 발견했다. 중요한 것은 우연 자체가 아니었다. 다른 연구자라면 오염된 배양접시라며 버렸을 수도 있었지만, 플레밍은 곰팡이 주변에서 세균이 자라지 않는 현상을 눈여겨봤다.
그 관찰이 훗날 페니실린 연구의 출발점이 됐고, 이후 하워드 플로리와 에른스트 체인 등의 연구와 대량생산 기술이 더해지면서 인류의 감염병 치료를 바꾸었다. 플레밍·플로리·체인은 194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실수가 성공을 만들었다’는 단순한 교훈보다 더 중요한 것을 본다.
실수는 누구에게나 생긴다. 실패 역시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러나 같은 실패를 겪고도 어떤 사람은 오염된 접시를 버리고, 어떤 사람은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본다.
기업도 그렇다.
경기가 나빠져 매출이 줄어드는 것은 손실이다. 그러나 그때 비로소 수익성 없는 거래를 발견할 수 있다.
재고에서 큰 손실을 입는 것은 뼈아픈 일이다. 그러나 그 일을 겪고 나서야 재고관리와 현금흐름의 중요성을 조직 전체가 체득하는 경우도 있다.
거래처 하나를 잃는 것도 아프다. 그러나 특정 거래처에 지나치게 의존했던 사업구조를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오랫동안 해온 사업을 접는 것은 더 큰 고통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 결단 덕분에 회사 전체가 살아남기도 한다.
철강 유통업계의 한 노련한 경영자라면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돈을 잃는 것보다 무서운 것은 잃고도 배우지 못하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호황기에는 누구나 자기 실력을 과대평가하기 쉽다. 시장이 좋아 돈을 벌었는데도 자신의 판단이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착각한다. 반대로 불황이 오면 세상 탓부터 하기 쉽다.
하지만 진짜 경영의 실력은 잃었을 때 드러난다.
적자를 인정할 수 있는가.
잘못 산 재고를 미련 없이 정리할 수 있는가.
한때 성공했던 방식이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겠다는 조급함 때문에 더 큰 위험을 떠안지 않을 수 있는가.
나는 오랫동안 시장을 보면서 ‘손실을 만회하려는 욕심’ 때문에 더 큰 손실을 입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철강가격이 떨어졌다고 평균단가를 낮추겠다며 계속 재고를 늘리고, 거래에서 손해를 봤다고 더 큰 물량으로 한 번에 만회하려 한다. 사업이 흔들리면 더욱 공격적인 차입으로 외형을 키우기도 한다.
그러나 상실의 순간에는 달리는 것보다 멈춰 서는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무엇을 잃었는지 계산하고, 왜 잃었는지 살펴보고, 다시는 같은 방식으로 잃지 않을 방법을 찾는 것이다.
비가 온 뒤 땅이 저절로 단단해지는 것은 아니다.
물이 빠지고 햇볕이 들고 시간이 지나야 땅이 굳는다.
사람도 기업도 마찬가지다.
고난을 겪었다고 저절로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상처를 돌아보고, 원인을 이해하고, 행동을 바꾸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실패가 경험이 된다.
그래서 나는 ‘잃으면 더 큰 것을 얻게 된다’는 말을 무조건 믿지는 않는다.
세상은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
잃은 만큼 반드시 돌려주는 법칙도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믿는다.
잃어버린 뒤에 무엇을 배우느냐에 따라 그 상실의 의미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업에서 돈을 잃고 위험관리 능력을 얻을 수 있다.
직책을 잃고 자유를 얻을 수도 있다.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거래를 잃고 더 좋은 고객을 만날 수도 있다.
한 시대의 성공방식을 내려놓고 새로운 시장으로 향할 수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무엇인가를 잃은 뒤에야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철을 만드는 과정도 이와 닮았다.
뜨거운 쇳물은 불순물을 덜어내고, 압연과 냉각이라는 거친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쓰임새 있는 강재가 된다. 사람과 기업 역시 인생과 시장이라는 압연기를 지나며 조금씩 모양을 갖추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므로 잃어버린 날에는 너무 서둘러 절망할 필요가 없다.
그 빈자리가 아직 무엇으로 채워질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오늘의 손실이 내일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오늘의 실패를 제대로 들여다본 사람에게 내일의 선택은 어제와 분명 달라진다.
인생도 경영도 결국 그런 차이가 쌓여 길을 만든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끝이라고 생각했던 순간 가운데 상당수는 끝이 아니었다.
하나의 문이 닫혔을 뿐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뒤 돌아보면 알게 된다.
그때 잃어버렸기 때문에 가지 않게 된 길이 있었고,
그때 잃어버렸기 때문에 비로소 찾게 된 길도 있었다는 것을.
상실이 곧 축복이라는 말은 지나치게 낭만적이다.
그러나 상실을 헛되게 만들지 않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무엇을 잃었느냐보다,
잃은 뒤 무엇을 보았느냐.
어쩌면 그것이 인생의 후반부를 살아가는 사람과 불황을 건너는 기업 모두에게 필요한 가장 오래된 경영 원칙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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