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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계절⑲ — 8월 8일의 코일




해당 완제품: 용융아연도금강판 | 강철의 계절 19회


이유진이 일본 고객의 메일을 받은 시각은 8월 8일 오전 7시 12분이었다.

‘잠정관세 적용에 따라 예정 선적분을 보류합니다.’

문장은 한 줄이었다.


창고에는 그 고객을 위해 생산한 용융아연도금강판 740톤이 있었다. 폭과 도금량은 일본 건축자재 규격에 맞췄고, 포장재에는 고객 코드가 인쇄돼 있었다. 한국산에 적용되는 잠정 반덤핑관세는 29.2~38.0%였다. 계약가격을 조금 조정해 해결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다.


생산은 끝났고 대금은 들어오지 않았다.


세 가지 재고

이유진은 740톤을 한 덩어리로 보지 않았다.


첫 번째는 국내에서도 바로 팔 수 있는 범용 규격 260톤이었다.

두 번째는 포장과 가장자리 가공을 바꾸면 제3국에 판매할 수 있는 310톤이었다.

세 번째는 일본 고객의 승인 조건에 맞춘 전용 규격 170톤이었다.


영업본부장은 전량을 국내 유통으로 돌리자고 했다.

“GI가 톤당 108만~110만 원입니다. 조금만 낮추면 나갑니다.”


유통담당자는 반대했다.

“740톤을 한꺼번에 풀면 우리 거래처가 먼저 손해를 봅니다. 지난달 비싼 가격에 받아간 재고가 남아 있습니다.”


재무팀은 다른 숫자를 봤다.

“다음 주 결제할 아연 대금이 있습니다. 최소 300톤은 현금화해야 합니다.”


이유진은 일본 고객에게 취소 여부를 물었다. 회신은 ‘보류’였다. 관세 적용이 끝나거나 가격 분담 방식이 정해지면 일부 물량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12월 7일까지 창고에 코일을 쌓아둘 수는 없었다.


청람철강의 제안

이유진은 김민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회에 아크트레이솔루션 H형강을 샀던 방식 기억하십니까?”

“회생재산 매각 말입니까?”

“아니요. 물건을 쓰일 곳에 맞춰 나눈 방식이요.”

“GI를 누구에게 팔려고요?”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팔 수 있는 상태로 나누려고요.”


김민철은 다음 날 창고에 왔다. 그는 코일의 외관보다 태그와 성적서, 포장표시를 오래 확인했다.

“범용 260톤은 유통시장에 바로 낼 수 있겠군요.”

“가격을 낮추면요.”

“가격부터 낮추지 마십시오. 월 계약물량에 나눠 넣죠.”

“현금이 급합니다.”

“그러면 단가가 아니라 결제조건을 바꾸십시오. 현금 거래처에 소량 우선 배정하고, 기존 거래처에는 같은 가격을 유지해야 합니다.”


재가공 가능한 310톤은 아크트레이솔루션의 라인과 연결됐다. 공장이 다시 가동하면서 포장 해체와 가장자리 절단, 재포장이 가능해졌다. 회생회사는 가공임을 현금으로 받을 수 있었고, 이유진은 제3국 고객에게 맞는 규격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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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 규격 170톤은 그대로 남겼다.


할인 대신 시간표

범용 260톤을 한 번에 할인 판매하면 현금은 빨리 들어오지만 시장가격을 흔들 수 있었다. 이유진은 다섯 거래처에 40~60톤씩 나눠 제안했다. 가격은 기존 계약선과 크게 다르지 않게 유지하는 대신 즉시 출고와 현금 결제를 조건으로 했다.


한 거래처가 물었다.

“일본 취소 물량 아닙니까?”

“보류 물량 중 국내 승인 가능한 규격입니다.”

“그렇다면 더 싸야 하지 않습니까?”

“싸서 나온 물량이 아니라 사용처가 바뀐 물량입니다. 성적서와 품질보증은 같습니다.”

“다른 곳은 할인할 텐데요.”

“다른 곳의 재고와 비교하십시오. 저희는 현금 조건 대신 즉시 납기와 소량 분할을 보장합니다.”


세 거래처가 주문했다. 목표한 300톤에는 못 미쳤지만, 재가공 물량의 가공임을 지급하고도 아연 대금 일부를 막을 수 있었다.

제3국 고객과의 협상은 더 복잡했다. 포장 변경비와 추가 검사를 누가 부담할지를 두고 메일이 오갔다. 이유진은 단가를 더 낮추는 대신 첫 80톤의 시험주문만 받았다. 품질승인이 끝나면 나머지 물량을 순차 공급하는 조건이었다.


일본 고객의 화상회의

8월 말, 일본 고객이 화상회의를 요청했다. 그들은 잠정관세를 수출자가 부담해 달라고 했다.

“기존 계약을 유지하려면 가격 조정이 필요합니다.”


이유진이 물었다.

“관세 전액을 한국 공급자가 부담하라는 뜻입니까?”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그러면 공급가격이 제조원가 아래로 내려갑니다.”

“다른 공급선도 검토 중입니다.”


회의실 뒤편에서 재무팀장이 메모를 내밀었다. ‘170톤이라도 현금화 필요.’

이유진은 메모를 접었다.


“170톤은 고객 전용 규격이라 다른 시장으로 돌리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손실을 전액 부담할 수도 없습니다. 물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관세 부담을 분담하는 안을 제시하겠습니다.”

일본 고객은 즉답하지 않았다.


결말 — 보류는 창고의 다른 이름이었다

9월 첫째 주, 일본 고객은 80톤만 인수하기로 했다. 관세는 양측이 일정 비율로 나눠 부담했다. 나머지 90톤의 계약은 유지하되 최종판정까지 선적을 미뤘다.

이유진은 전량 판매에 실패했다. 그러나 국내 시장에 740톤을 던져 가격을 무너뜨리지 않았고, 제3국 전환 가능성을 확인했으며, 전용 규격 고객관계를 남겼다. 아크트레이솔루션은 재가공 임금을 받아 두 번째 급여일을 넘겼다.


김민철이 물었다.

“보류 재고가 얼마나 남았습니까?”

“90톤입니다.”

“처음엔 740톤이었죠.”

“네.”

“그럼 많이 해결했군요.”


이유진은 창고 끝의 코일을 바라봤다.

“팔리지 않은 90톤이 가장 비싼 물량입니다.”

그 코일에는 제조원가뿐 아니라 보관료, 관세 협상, 고객관계와 기다린 시간이 쌓여 있었다.

8월 8일은 관세가 시작된 날이었다. 이유진에게는 같은 코일이 세 가지 재고로 갈라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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