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당 완제품: 철근 | 강철의 계절 20회
강도윤은 휴동 중인 전기로 앞에서 주문서를 받았다.
국산 철근 1,600톤. SD400 10mm와 13mm. 물류센터 2개 동. 첫 납품은 열흘 뒤.
영업팀은 이 주문이 휴가 뒤 시장 회복의 신호라고 말했다. 생산팀은 전기로를 하루 일찍 켜자고 했다. 그러나 8월 가동계획은 이미 52.4% 수준으로 낮아져 있었다. 정비인력은 베어링 교체를 끝내지 못했고, 원료야드에는 스크랩이 있었지만 규격별 배합을 맞추기에는 부족했다.
주문가격은 유통시세에 가까웠다. 톤당 85만~86만 원. 제강사의 고시가격은 91만 원대였다.
강도윤이 영업팀장에게 물었다.
“이 가격으로 신규 생산하면 얼마가 남습니까?”
“현장 선점이 중요합니다.”
“얼마가 남습니까?”
“다음 물량까지 보면 달라집니다.”
그 답을 듣는 순간 도윤은 주문서의 1,600톤보다 전기로 재가동 버튼이 더 무거워졌다고 느꼈다.
29만 톤의 의미
시장에는 철근 재고가 약 29만 톤이라는 숫자가 돌았다. 예년보다 과도하지 않다는 해석이 붙었다. 영업팀은 공급이 줄면 가격이 회복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전국 재고와 도윤의 공장 재고는 같은 숫자가 아니었다. 공장에는 10mm가 충분했고 13mm가 부족했다. 주문의 절반은 기존 재고로 낼 수 있었지만 나머지를 맞추려면 압연라인을 다시 돌려야 했다.
원료팀은 일본산 스크랩 계약가격이 내려갔다고 보고했다.
“원가는 좋아지는 것 아닙니까?” 영업팀장이 물었다.
원료팀장이 답했다.
“다음 달 도착분입니다. 오늘 전기로에 넣을 물량이 아닙니다.”
국내 스크랩 입고는 폭염과 휴가로 줄어 있었다. 가격이 약해져도 물량이 바로 늘지 않았다. 값싼 수입 스크랩과 오늘 야드에 있는 스크랩의 시간이 달랐다.
현장의 야적장
강도윤은 물류센터 현장으로 갔다. 주문서를 낸 시공사 구매팀은 1,600톤 전량을 한 번에 확보하려 했다.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물량을 잡겠다는 판단이었다.
현장소장이 그 말을 듣고 끼어들었다.
“전량을 어디에 놓습니까?”
구매팀장이 대답했다.
“야적장 B구역을 쓰면 됩니다.”
“다음 주부터 기초장비가 들어옵니다. B구역은 비워야 합니다.”
“그러면 분할 납품하면 되죠.”
“공정표를 보셨습니까? 10mm는 먼저 필요하지만 13mm는 한 달 뒤입니다.”
구매팀과 현장팀은 같은 회사였지만 주문을 보는 시간이 달랐다. 구매팀은 가격이 오르기 전을 봤고, 현장팀은 철근이 실제로 투입되는 날을 봤다.
강도윤은 주문을 세 부분으로 나눴다.
기존 재고에서 10mm 500톤을 열흘 안에 공급한다.
13mm 500톤은 정비 완료 후 첫 압연 로트로 생산한다.
잔량 600톤은 기초공정 진도와 첫 대금 입금 뒤 확정한다.
구매팀장이 반발했다.
“우리는 1,600톤 가격을 고정하려고 주문한 겁니다.”
“가격은 1,600톤 기준으로 협의하되 생산과 납품은 공정에 맞춰 나누겠습니다.”
“그 사이 시장가격이 오르면요?”
“저희가 약속한 물량은 지킵니다. 대신 두 번째 출하 전 첫 대금이 들어와야 합니다.”
전기로를 켜지 않은 첫 주
공장은 기존 재고 500톤을 출하했다. 영업팀은 매출이 작다고 불평했지만 현장에는 그 이상을 놓을 공간이 없었다. 정비팀은 예정대로 베어링을 교체했고 전기로는 꺼진 채였다.
그 사이 다른 유통업체가 같은 현장에 더 낮은 가격을 제시했다. 구매팀은 잔량을 경쟁사로 돌릴 수 있다고 압박했다.
강도윤은 가격을 따라가지 않았다.
“첫 500톤 검수와 대금 조건부터 확인하겠습니다.”
“시장 점유율을 잃습니다.” 영업팀장이 말했다.
“손실을 생산해서 점유율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며칠 뒤 현장에서 연락이 왔다. 첫 물량의 가공이 예상보다 빨랐다. 그러나 기초공정 일부가 설계변경으로 멈춰 13mm 투입은 오히려 늦어졌다. 전량을 미리 생산했다면 공장 창고나 현장 야적장에 한 달을 더 쌓아둬야 했다.
결말 — 생산하지 않은 600톤
정비가 끝난 뒤 전기로가 다시 켜졌다. 13mm 500톤이 첫 로트로 생산됐다. 첫 납품대금도 약속한 날 들어왔다.
잔량 600톤은 결국 400톤으로 줄었다. 설계변경으로 철근 소요량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영업팀이 처음 주문서대로 전량 생산했다면 200톤은 별도 판매처를 찾아야 했다.
강도윤은 생산회의에서 말했다.
“우리는 200톤을 잃은 게 아닙니다.”
영업팀장이 물었다.
“수주가 줄었는데요?”
“팔리지 않을 200톤을 만들지 않은 겁니다.”
그는 전기로 가동률표와 현금회수표를 같은 화면에 띄웠다. 가동률이 낮다는 이유로 모든 주문을 받아 라인을 채우면 재고와 미수금이 늘어날 수 있었다. 감산은 생산량을 줄이는 일이 아니라 손실이 될 물량을 구분하는 일이었다.
회의가 끝난 뒤 원료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국내 스크랩 입고가 예상보다 회복되지 않아 다음 주 배합을 다시 조정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꺼진 전기로는 주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강도윤은 주문서가 왔다고 바로 불을 켜지 않았다. 불은 생산량을 만들었고, 현금은 계약조건이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