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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산책] 저항이 우리를 살게 한다

[철의 산책] 저항이 우리를 살게 한다

빗방울의 종단속도에서 읽는 철강 경영의 역설… 불황·여신·품질·규제가 때로 기업의 과속을 막는 브레이크가 된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우리는 우산부터 찾는다. 하늘 높은 곳에서 떨어져 온 물방울이 머리와 어깨를 두드리지만, 그 작은 충격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생각해 보면 묘한 일이다. 지구의 중력은 떨어지는 물체를 계속 가속시킨다. 그런데 빗방울은 끝없이 빨라지지 않는다. 아래로 끌어당기는 중력에 맞서 공기가 저항하기 때문이다. 두 힘이 균형을 이루는 순간 빗방울은 더 이상 가속하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떨어진다. 물리학에서는 이를 종단속도라고 부른다.

미국 국립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큰 빗방울의 종단속도는 초속 약 9m, 시속으로 환산하면 약 32km 수준이다. 작은 빗방울은 이보다 더 느리다. 저항은 빗방울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 다만 무한히 빨라지는 것을 막는다.

철강시장을 오래 걷다 보면 이 단순한 물리 법칙이 경영의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기업은 언제나 앞으로 가려 한다. 더 많이 팔고, 더 빨리 회전시키고, 더 많은 거래처를 확보하고, 더 큰 설비를 갖고 싶어 한다. 성장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속도다. 기업도 저항 없이 계속 가속하면 어느 순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속도를 넘어선다.

매출에 저항이 없다면 현금흐름이 무너질 수 있다

철강 유통 현장에서 가장 달콤한 말 가운데 하나가 “물량을 더 달라”는 고객의 주문이다.

영업사원에게는 실적이고 회사에는 매출이다. 하지만 그 거래처의 결제가 늦어지고 있는데도 물량을 계속 늘려준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신한도는 영업의 발목을 잡는 귀찮은 규정처럼 보인다. 담보 요구도 그렇다. 연체 거래처의 출하를 막는 신용관리 부서는 영업 현장에서는 때때로 가장 불편한 존재가 된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 기업을 살릴 때가 있다.

자동차의 브레이크가 자동차를 느리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 여신관리도 판매를 방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더 오래 달리기 위해 속도를 통제하는 장치다.

저항이 전혀 없는 매출은 때때로 성장이 아니라 미수금의 가속일 뿐이다.

재고에도 종단속도가 필요하다

철강업에서 재고는 힘이다.

고객이 원하는 규격을 바로 공급할 수 있고, 시장이 오를 때는 수익의 원천이 된다. 하지만 상승장을 믿고 매입을 계속 늘리기 시작하면 재고는 어느 순간 자산에서 부담으로 얼굴을 바꾼다.

창고 한계, 금융비용, 회전일수, 품목별 적정재고 같은 내부 기준은 그래서 필요하다.

좋은 시절에는 이런 기준이 답답해 보인다.

“조금만 더 사두면 더 벌 수 있는데 왜 막는가.”

그러나 가격이 꺾이고 거래가 얼어붙으면 그때 비로소 기준의 의미를 알게 된다.

철강기업에서 적정재고 기준은 공기저항과 닮았다. 상승하는 욕심을 완전히 멈추지는 않지만, 기업이 감당할 수 없는 속도까지 매입이 가속되는 것을 막는다.

품질검사는 생산을 늦추지만 회사를 지킨다

제철소와 가공현장에도 수많은 ‘저항’이 존재한다.

검사, 승인, 시험성적서 확인, 설비점검, 안전절차, 고객 규격 검토가 그렇다.

당장 생산성과 납기만 놓고 보면 이 절차들은 모두 시간을 잡아먹는다. 한 공정을 생략하면 출하는 조금 빨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철강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자동차, 조선, 건설, 기계, 에너지 산업에 들어간 철강재는 최종 구조물과 설비의 안전에 연결된다. 한 번의 품질 사고가 몇 년간 쌓아온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

그래서 좋은 공장은 단순히 빠른 공장이 아니다.

멈춰야 할 때 멈출 수 있는 공장이다.

규제라는 맞바람을 어떻게 볼 것인가

경영자에게 규제는 대부분 반갑지 않다.

환경규제, 탄소감축 요구, 무역규제, 안전기준, 인증제도는 비용을 늘리고 의사결정을 늦춘다.

그러나 모든 규제를 한 종류의 장애물로 볼 필요는 없다.

어떤 규제는 불필요한 마찰일 수 있고 과도한 행정비용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안전과 품질, 환경 문제처럼 시장 전체가 장기적으로 감당해야 할 위험을 통제하는 규칙도 있다.

중요한 것은 저항을 무조건 없애는 것이 아니다.

불필요한 저항과 필요한 저항을 구별하는 일이다.

기업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보고를 위한 보고, 책임 회피를 위한 결재단계,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남아 있는 관행은 제거해야 한다. 하지만 신용관리, 품질검사, 안전관리, 투자심사처럼 기업의 추락을 막는 저항은 오히려 단단하게 유지해야 한다.

저항을 통과한 사람들

예술과 정치, 산업의 역사에서도 저항은 뜻밖의 흔적을 남겼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1913년 5월 29일 파리 초연 당시 관객들의 야유와 격렬한 소동을 불러왔다. 그러나 훗날 이 작품은 20세기 음악을 바꾼 대표적 작품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게 됐다. 당시의 저항이 작품의 가치를 만든 것은 아니지만, 기존 질서와 충돌할 만큼 새로운 것이 등장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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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 처칠은 1929년 이후 약 10년간 장관직에서 멀어져 있었고, 특히 독일에 대한 유화정책을 비판하면서 정치적으로 고립되는 시기를 겪었다. 이른바 ‘광야의 시기’다. 그가 옳았던 모든 이유를 고립 그 자체에서 찾을 수는 없지만, 권력 밖의 시간이 그의 판단과 목소리를 시험했던 것은 사실이다.

제임스 다이슨 역시 사이클론 방식 청소기를 완성하기까지 5,127개의 시제품을 만들었다고 회사 측 자료는 전한다. 실패는 그에게 훈장이 아니라 수정해야 할 데이터였다.

사례확인된 수치·시점저항이 보여준 의미
큰 빗방울종단속도 약 9m/s, 약 32km/h공기저항이 무한 가속을 억제
《봄의 제전》1913년 5월 29일 초연새로운 시도가 기존 관습과 충돌
처칠의 ‘광야의 시기’1929년 이후 약 10년권력 밖에서 신념과 판단이 시험받음
다이슨 개발 과정5,127개 시제품반복 실패를 설계 개선 데이터로 활용

모든 고난이 성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야 한다.

고난을 미화해서는 안 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은 큰 역경을 경험한 뒤 일부 사람들이 삶의 의미, 인간관계, 새로운 가능성, 개인적 힘 등에 긍정적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런 성장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며, 고통 자체가 자동으로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기업도 그렇다.

불황을 겪었다고 모든 회사가 강해지지는 않는다.

위기 이후 재고정책을 바꾸고, 손익구조를 다시 보고, 거래처 신용을 재점검하고, 실패한 투자의 원인을 기록한 기업만 다음 위기에서 조금 더 단단해진다.

고통이 기업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고통에서 무엇을 배웠는지가 기업을 바꾼다.

철강기업에 필요한 다섯 가지 ‘좋은 저항’

현장에서 오래 살아남은 기업들을 보면 조직 안에 적당한 마찰이 있다.

영업에는 여신한도가 있다.

구매에는 적정재고 기준이 있다.

생산에는 품질검사가 있다.

투자에는 수익성 심사가 있다.

경영자에게는 “아닙니다”라고 말할 사람이 있다.

처음에는 모두 불편하다.

하지만 이 다섯 가지가 사라진 조직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문제는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제동을 걸지 못한다는 점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들은 불황이 깊어질수록 매출보다 현금흐름, 물량보다 마진, 외형보다 생존성을 먼저 봐야 한다고 말한다. 좋은 경영은 액셀을 잘 밟는 기술만이 아니다. 언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지 아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빠르게 가는 것과 제대로 가는 것은 다르다

비가 그친 뒤 창밖을 보면 처마 끝에 마지막 물방울 하나가 매달려 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아래로 떨어진다.

중력은 그것을 끌어당기고 공기는 밀어 올린다. 두 힘 사이에서 물방울은 자신이 허락받은 속도로 내려간다.

멈추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무한히 가속하지도 않는다.

우리의 삶도, 기업의 성장도 어쩌면 그래야 하는지 모른다.

저항이 하나도 없는 길을 찾는 것보다 어떤 저항은 없애고 어떤 저항은 지켜야 하는지 아는 일이 더 중요하다.

철은 불과 압력을 견뎌야 강해진다.

기업은 시장의 저항을 통과하며 체질을 만든다.

그리고 오랜 세월 시장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안다.

나를 늦추는 모든 것이 적은 아니다. 때로는 그 저항 때문에 우리는 추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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