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철강시장이 관세 장벽뿐 아니라 수출 행정까지 한층 촘촘한 관리시장으로 바뀌고 있다. 정부가 EU와 영국의 새로운 철강 수입규제에 맞춰 국내 철강재 수출승인 체계를 손질하면서 앞으로 유럽향 수출에서는 가격 경쟁력뿐 아니라 쿼터 잔량과 승인서 발급, 선적 시점 관리가 거래 성패를 좌우할 가능성이 커졌다.
국가법령정보센터에 따르면 산업통상부 고시 제2026-100호로 개정된 「수출입공고」가 8월 19일부터 시행됐다. 수출입공고는 대외무역법에 따라 수출제한품목과 품목별 승인절차를 정하는 행정규칙으로, 이번 개정에서는 변화한 EU·영국 철강 수입제도에 맞춰 철강재 수출요령이 조정됐다.
다만 이를 단순히 ‘미국에만 있던 승인제도를 EU로 확대했다’고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한국철강협회는 2019년 이미 수출입공고에 근거한 대EU 철강재 수출승인 업무를 안내한 바 있다. 이번 조치는 기존 EU 승인제도를 새로운 TRQ 체계에 맞게 재편하면서 영국을 관리 대상에 본격 반영하고 품목 범위를 확대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업계 자료에서는 특히 선재와 스테인리스 열연이 기존 EU 승인 절차 밖에 있다가 새 관리범위에 들어온 품목으로 지목되고 있다.
EU 쿼터 전체 46% 감소…한국은 19.7% 축소로 방어
EU는 기존 철강 세이프가드를 종료하고 7월부터 새로운 철강 수입관리 체계를 가동했다. EU 전체 무관세 철강 수입물량은 기존 3,382만톤에서 약 1,835만톤으로 46% 줄었고, 쿼터를 넘어서는 물량에는 50% 관세가 적용된다.
한국은 국가 간 경쟁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전용쿼터 207만3천톤을 확보했다. 기존 258만1천톤보다 약 50만8천톤, 19.7% 감소한 규모다. EU 전체 쿼터 축소폭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시장 접근권을 방어했지만, 절대적으로는 연간 50만톤 이상의 전용 수출공간이 줄어든 셈이다.
공용쿼터까지 감안하면 실제 무관세 수출 가능량은 단순 국가 전용쿼터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앞으로는 계약가격뿐 아니라 현지 통관 시점에 해당 품목의 쿼터가 남아 있는지가 수익성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구조가 강해질 전망이다. 이는 제도 구조를 바탕으로 한 철강정보원의 분석이다.
영국도 무관세 물량 대폭 축소…초과분 50%
영국 정부는 7월 1일부터 기존 철강 세이프가드를 대체하는 새로운 철강 무역조치를 시행했다. 전체 무관세 쿼터를 종전 세이프가드 대비 51% 축소했고 쿼터 초과 물량에는 50% 관세를 부과한다. 기존 세이프가드의 25% 추가관세는 6월 30일 종료됐다.
영국 제도는 품목·국가별로 쿼터가 나뉘며 일부 제품에는 한국 전용쿼터도 별도로 설정돼 있다. 따라서 영국향 계약은 전체 쿼터보다 수출 제품의 카테고리와 한국에 배정된 해당 분기 물량을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행정절차도 이제 원가다
관련 철강재를 EU나 영국으로 수출할 때는 한국철강협회의 수출승인 절차를 거쳐야 하며, 수출신고 단계에서는 승인번호 기재와 승인서 전자제출이 요구된다. 품목별 적용 여부가 HS코드를 기준으로 결정되는 만큼 영업부서가 제품명만으로 판단하기보다 통관부서·관세사와 HSK 코드까지 교차 확인할 필요가 있다.
승인 신청과 쿼터 확인이 늦어져 선적을 미루거나 도착 시점에 쿼터가 소진되면 물류·창고·금융비용까지 연쇄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 특히 장기 해상운송이 필요한 EU향 물량은 한국 선적 당시와 유럽 통관 당시의 쿼터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시간차 위험이 있다.
계약단계에서도 쿼터 소진 위험과 초과관세, 통관 지연에 따른 창고료를 누가 부담할지 보다 명확히 정할 필요가 커졌다.
EU 수출 감소…규제 효과만으로 단정은 경계
한국의 7월 EU향 철강 수출량은 18만948톤으로 전년 동월보다 44.8% 감소했고 수출액도 약 41% 줄었다. 새로운 EU 철강조치가 시작된 첫 달이라는 점에서 규제 영향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통관 시차와 제도 시행 전 기업들의 선제적인 물량조정도 있었기 때문에 7월 한 달 실적만으로 구조적인 수출 감소폭을 확정하기는 이르다.
유통·수출업계, ‘오더 확보’에서 ‘도착관리’로
이번 제도 변화는 국내 철강사뿐 아니라 상사와 트레이더, 수출 가공센터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요구한다. 계약 후에도 수출승인, 한국 측 통관, 선적일, EU·영국 도착일, 현지 쿼터 잔량까지 하나의 거래로 관리해야 한다.
특히 고정가격으로 장기계약을 체결하는 업체는 쿼터 초과관세 위험을 가격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FOB 가격이 경쟁사보다 수십 달러 낮아도 현지에서 50% 초과관세가 발생하면 가격경쟁 자체가 의미를 잃는다.
따라서 하반기 유럽향 철강영업의 관리지표도 달라져야 한다. 단순 수주량보다 ① 품목별 잔여쿼터, ② 승인서 발급 완료 여부, ③ 예상 통관일, ④ 현지 도착원가, ⑤ 쿼터 소진 시 대체시장 여부를 함께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번 수출입공고 개정은 새로운 행정절차 하나가 추가된 정도의 사안이 아니다. EU와 영국이 철강 수입을 물량 중심으로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국내에서도 수출물량을 사전에 관리할 필요성이 커진 데 따른 후속조치다. 앞으로 유럽 철강시장에서 경쟁력은 생산원가나 FOB 가격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얼마나 정확하게 쿼터를 확보하고, 승인과 선적·통관 시점을 관리하느냐가 새로운 수출 경쟁력의 일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