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제: 118만원의 국산 H형강이 더 싼 수입재와 싸운 것은 가격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2026년 9월 4일 금요일 | 한빛구조강 영업소·수도권 H형강 창고
이 작품은 실제 철강시장 자료를 모티프로 창작한 픽션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과 일부 기업·사건은 허구이며, 실제 기업·단체·사건과 관련이 없다. 실제 기업명은 공개된 시장정보와 가격정책을 설명하기 위한 범위에서만 사용했다.
119만원에서 멈춘 지게차
금요일 오전 7시 20분, 한빛구조강 창고의 지게차가 출하열 앞에서 멈췄다. 현장에 보내야 할 H형강 규격은 창고 안에 있었지만 다른 고객 예약분 아래에 깔려 있었다. 영업사원 박지호는 오후까지 현장에 물량이 들어가지 않으면 철골 작업이 밀린다고 독촉했고, 창고반장은 상단 재고를 들어내면 오전 출하 두 건이 늦어진다고 버텼다.
그 주 국산 중소형 H형강 유통가격은 118~119만원/톤으로 120만원대 상단에서 밀려 약보합을 보였다. 베트남산은 113만원, 일본·중국산은 106만원 수준이었다. 가격표만 놓고 보면 국산이 가장 불리했다. 고객이 싼 수입재를 들고 협상 테이블에 앉는 순간 국산 유통사는 단가를 방어하기 어려웠다.
영업소장 강우진이 창고반장에게 물었다. “물건이 없는 겁니까, 못 꺼내는 겁니까?”
“물건은 있습니다. 그런데 저걸 빼려면 다른 묶음을 먼저 옮겨야 합니다.”
물류담당 오세라가 말했다. “오전 예약 두 건을 미루면 됩니다. 대신 다른 고객 약속을 깨게 됩니다.”
재무팀 권민수는 다른 서류를 들고 있었다. “급하다는 그 고객, 지난달 대금 일부가 남았습니다.”
지호가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납기 못 맞추면 다음 프로젝트부터 베트남산 쓰겠답니다. 113만원 얘기를 계속합니다.”
민수가 물었다. “113만원짜리가 오늘 오후 현장에 들어옵니까?”
그 질문에 방 안이 조용해졌다.
가장 싼 가격과 가장 빠른 물건
오전 8시 반, 고객 구매담당자와 통화가 연결됐다.
“국산이 118~119인데 베트남산은 113입니다. 일본·중국산은 더 낮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고객이 말했다. “국산을 계속 쓸 이유를 설명해주십시오.”
우진이 답했다. “오늘 오후 필요한 물량과 다음 프로젝트용 물량을 나눠 보시죠. 오늘 필요한 건 저희가 출하할 수 있습니다. 다음 프로젝트는 수입재 조건까지 같이 비교해드리겠습니다.”
“가격을 못 맞춰준다는 말입니까?”
“가격만 맞추면 오늘 현장이 멈춥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가와 납기를 따로 봐야 합니다.”
고객은 잠시 말을 멈췄다. “오후 두 시 전 절반만 들어와도 작업은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진은 바로 말했다. “절반은 오늘, 잔량은 다음 배차로 잡겠습니다. 대신 미수금 일부는 출차 전 정리해주십시오.”
통화를 끊자 지호가 물었다. “113만원에 맞춰달라는 요구는요?”
“맞추지 않습니다. 오늘 국산 재고를 113만원짜리 미래 물량처럼 팔 수는 없어.”
민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납기 프리미엄을 돈으로 받지 못해도 결제조건으로는 받아야 합니다.”
창고가 만든 가격
오전 9시, 우진은 창고로 내려갔다. 필요한 규격은 예약재 아래에 있었지만 옆 적치열에 절단 조합을 바꾸면 일부 대체할 수 있는 길이 있었다. 품질·가공 담당은 규격과 성적서를 확인한 뒤 사용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절단 과정에서 자투리 손실과 추가 가공비가 생길 수 있었다.
세라가 물었다. “추가 비용을 고객에게 받을까요?”
우진은 고개를 저었다. “이번 긴급분은 우리가 부담합니다. 대신 다음 계약부터 긴급 출하 조건을 분리합니다.”
지호가 불만을 표시했다. “그렇게 하면 결국 국산은 더 비싸 보입니다.”
“국산을 비싸게 파는 게 아니라 오늘 쓸 수 있는 재고를 파는 거야.” 우진이 말했다. “수입재는 수입재대로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어. 하지만 도착 전 가격과 창고 안 가격을 같은 줄에서 비교하면 영업이 계속 밀린다.”
오전 열한 시가 되기 전, 다른 고객이 현장 사정으로 오후 출하를 월요일로 늦춰도 된다고 연락했다. 덕분에 예약재 일부를 건드리지 않고 긴급분을 꺼낼 수 있게 됐다.
세라가 웃었다. “가격은 그대로인데 재고가 갑자기 생겼네요.”
우진이 말했다. “그래서 창고 위치와 납기정보도 가격입니다.”
106만원이 만든 질문
점심 회의에서는 더 낮은 일본·중국산 H형강 106만원이 화제가 됐다. 영업팀 일부는 다음 계약부터 수입재를 적극 확보해 국산 가격을 따라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매팀은 가격 차이가 크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실제 고객의 규격, 프로젝트 승인, 입고시점이 맞지 않으면 싸게 사온 재고가 창고에 오래 남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106만원이면 차이가 너무 큽니다.” 지호가 말했다.
구매담당 이정아가 답했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합니다. 싸다고 많이 사면 우리가 수입재 가격으로 국산을 누르는 게 아니라, 우리 재고끼리 서로 가격을 누르게 됩니다.”
민수가 덧붙였다. “게다가 수입재를 현금성 조건으로 들여와 국내에 장기 외상으로 팔면 표에 없는 금융비용이 붙습니다.”
우진은 일반형강 생산 자료를 펼쳤다. 상반기 ㄱ형강 생산은 전년 동기보다 22.6% 늘었지만 대형 규격 수출 확대의 영향이 컸고, ㄷ형강 생산은 22.6% 줄었다. 같은 ‘형강’ 안에서도 품목과 수요처가 다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형강 전체가 남아도는 시장이라고 단정하지 맙시다.” 우진이 말했다. “규격과 수요처가 다르면 재고 가치도 다릅니다. 수입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수입 검토표에 세 항목을 추가했다. ‘즉시 판매 가능한 고객’, ‘프로젝트 승인 여부’, ‘국산 재고와의 중복 규격’. 가격 차이를 보기 전에 실제로 팔릴 자리를 먼저 찾기로 했다.
다음 주문의 조건
오후 12시 40분, 첫 트럭이 창고를 빠져나갔다. 출차 직전 고객이 약속한 미수금 일부가 입금됐다. 긴급 절단과 재배치로 회사는 추가 비용을 부담했지만 다른 고객의 오전 약속을 깨지 않았고 현장도 멈추지 않았다.
오후 늦게 고객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오늘 물량 도착했습니다. 다음 프로젝트는 수입재 포함해서 같이 비교해봅시다.”
우진이 답했다. “좋습니다. 대신 현장 투입시점과 규격 승인부터 같이 보겠습니다.”
“국산 가격은 더 내려갈 수 있습니까?”
“시장에 따라 움직일 겁니다. 하지만 긴급분과 계획물량은 같은 조건으로 보지 않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뒤 지호가 물었다. “결국 고객을 붙잡은 겁니까?”
우진은 창고 입구에 쌓인 H형강을 바라봤다. “붙잡은 게 아니라 비교 기준을 바꾼 거지. 113만원과 118만원 사이에는 오늘이라는 시간이 있어.”
회사는 그날부터 견적을 두 종류로 나눴다. 즉시 출하가 필요한 물량은 국내 재고와 실제 가공·운송 가능 시간을 함께 제시하고, 계획 구매 물량은 수입재까지 포함해 도착시점과 승인조건을 비교하도록 했다. 무조건 국산을 지키지도, 무조건 수입재를 쫓지도 않았다.
대가는 분명했다. 긴급 출하분의 추가 가공비와 운송 조정 비용을 회사가 부담했고, 국산 가격을 수입재 수준까지 내리지 않아 일부 장기 물량을 놓칠 가능성도 남았다. 대신 미수 일부를 회수했고, 고객은 다음 프로젝트 비교협상에 한빛구조강을 다시 불러주기로 했다.
해가 질 무렵 창고등이 켜졌다. H형강 한 다발은 여전히 같은 무게였지만 그날의 가격은 하나가 아니었다. 118~119만원의 국산, 113만원의 베트남산, 106만원의 일본·중국산 사이에서 실제 거래를 결정한 것은 어느 물건이 언제, 어떤 조건으로 현장에 닿을 수 있느냐였다. 우진은 다음 주 회의 제목을 ‘수입재 대응’에서 ‘재고와 시간의 판매’로 바꿨다.
앵글 104만원이 말해준 것
오후 두 시 반, 창고 한쪽에서는 H형강이 아니라 앵글 출하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원자료의 앵글 유통가격은 104만원/톤으로 보합이었다. 같은 형강 범주 안에서도 H형강은 수입재와의 격차 때문에 상단이 밀리고 있었지만 앵글은 다른 흐름을 보였다.
지호가 물었다. “형강 시장이 약하다고 한 묶음으로 보고 수입을 늘리면 안 되는 이유가 이런 겁니까?”
정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반기 ㄱ형강 생산은 전년보다 22.6% 늘었지만 대형 규격 수출 영향이 컸고, ㄷ형강 생산은 22.6% 줄었습니다. 같은 형강이라고 재고와 수요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우진은 창고 배치표를 보며 말했다. “그러면 우리도 ‘형강 재고’라는 한 줄을 버립시다. H형강, 앵글, 채널을 따로 보고 규격별 회전을 같이 봐야 합니다.”
민수는 재무표에 재고회전일을 품목별로 나누기로 했다. 싸게 들여온 수입 H형강이 오래 머물면 그 자체가 국산 재고의 가격을 누를 수 있고, 반대로 회전이 빠른 앵글을 같은 기준으로 할인할 이유도 없었다.
우진은 영업팀에 말했다. “수입재 대응이라는 말을 너무 크게 쓰지 마. 고객이 원하는 규격과 납기부터 확인하고, 그 다음에 원산지와 가격을 놓자. 우리가 지켜야 할 건 국산이 아니라 거래의 순서야.”
그날의 가격
| 품목 | 가격 | 주간 변동 |
|---|---|---|
| 국산 중소형 H형강 | 118~119만원/톤 | 상단 하락·약보합 |
| 베트남산 H형강 | 113만원/톤 | 원자료상 별도 미제시 |
| 일본·중국산 H형강 | 106만원/톤 | 원자료상 별도 미제시 |
| 앵글 | 104만원/톤 | 보합 |
※ 시장자료 기준. 소설 속 고객·출하량·미수금·가공비·운송조건은 허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