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사 인상과 수요 부진의 팽팽한 줄다리기…열연은 1만 원 밀리고 후판·냉연도금은 제자리
저가 재고 소진이 시작된 7월, 청람철강은 ‘지금 팔 것인가, 버틸 것인가’의 갈림길에 섰다

월요일 아침 7시 40분, 청람철강 영업회의실의 에어컨은 밤새 쌓인 열기를 아직 다 밀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김민철 상무는 창가 블라인드를 내린 뒤 회의실 탁자 위에 놓인 가격표를 다시 펼쳤다. 붉은색 펜으로 표시한 숫자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정품 열연 96만~97만 원. 수입대응재 94만~95만 원. 일반 수입재 92만 원.
지난주보다 각각 1만 원가량 낮아진 가격이었다.
제조사는 가격을 올렸는데 유통가격은 내려갔다. 철강업계에서는 드물지 않은 일이었지만, 설명하기는 언제나 어려웠다. 매입원가는 높아졌고 창고의 재고는 줄었지만, 주문서는 좀처럼 늘어나지 않았다.
“지난주에는 정품 열연이 97만~98만 원 아니었습니까?”
영업팀의 젊은 대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맞아.”
김민철이 가격표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수입대응재는 96만 원 안팎이었고 수입재도 93만 원 정도였다. 그런데 거래가 붙지 않으니 이번 주에는 한 단계씩 내려온 거야.”
“그럼 더 낮춰야 합니까?”
김민철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가격을 낮춘다고 수요가 생기는 시장이면 고민할 것도 없지.”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지금 시장에서 부족한 것은 낮은 가격이 아니라 물건을 사야 할 이유였다. 건설경기는 여전히 얼어붙어 있었고, 강관사와 가공업체는 필요한 물량만 잘라서 주문했다. 재고를 쌓아두고 가격 상승을 기다리던 시대는 지나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제조사의 생각은 달랐다.
“공급가격은 올라갔습니다”
같은 시각, 태산제철 서울사무소에서는 판재류 판매전략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장도현 마케팅전략실장은 전국 서비스센터와 유통업체의 판매가격 자료를 화면에 띄웠다. 열연 유통가격 하락을 보여주는 숫자 옆에는 제조원가와 주문 투입량, 출하계획이 나란히 표시돼 있었다.
“시장에서 인상 철회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직원이 보고했다.
장도현은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우리가 가격을 철회했다는 공문을 보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인상 기조는 유지되는 겁니다.”
단호한 말이었지만 화면 속 숫자는 그의 말을 온전히 지지하지 못했다. 제조사가 공급가격을 올려도 유통업체가 오른 가격으로 판매하지 못하면 인상은 장부에만 남는다. 유통업체는 손실을 떠안고, 결국 다음 주문을 줄인다.
장도현도 그 구조를 모를 리 없었다.
그는 열연 시장의 재고 자료를 다음 화면에 띄웠다. 시중 재고가 과도하게 쌓인 상황은 아니었다. 제조사의 출하도 이전처럼 원활하지 않았고, 중국산 열연은 최저수입가격 시행 이후 과거와 같은 저가 공세를 펼치기 어려워졌다.
공급만 놓고 보면 가격을 지지할 만했다. 문제는 수요였다.
“시장은 결국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겁니다.”
장도현이 말했다.
“수요 부진 때문에 가격이 내려가든가, 저가 재고가 소진되면서 우리 공급가격을 따라오든가.”
“어느 쪽으로 보십니까?”
“7월 말까지 지켜봐야 합니다.”
그의 말은 전망이라기보다 희망에 가까웠다.
중국산 코일을 실은 배
점심 무렵, 청람철강 김민철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해동인터내셔널의 서지아 사업부장이었다.
“상무님, 열연 필요하지 않으세요?”
“가격부터 말해.”
“일반 수입재 도착도 기준 92만 원입니다. 물량이 많지는 않습니다.”
김민철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지난주보다 1만 원 낮아진 가격이었다. 그러나 예전처럼 수입재가 시장 전체를 흔들 만큼 싼 가격은 아니었다. 최저수입가격 시행 이후 중국산 열연의 저가 판매는 제한됐고, 기존 계약분도 높아진 원가를 안고 들어오고 있었다.
“그 가격이면 굳이 수입재를 늘릴 이유가 없는데.”
“그래서 물량이 많지 않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그런데 정품이 정말 97만 원 밑으로 내려오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누가 그렇게 팔겠어?”
서지아가 짧게 웃었다.
“현금이 필요한 회사가 팔겠죠.”
통화가 끝난 뒤에도 그 말이 김민철의 귀에 남았다.
현금이 필요한 회사.
철강 유통시장에서 가격은 언제나 수급만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월말 결제와 어음 만기, 금융기관의 여신 한도, 밀린 매입대금이 가격표 뒤에 숨어 있었다. 어느 회사가 버티지 못해 재고를 내놓는 순간, 어렵게 지켜온 시장가격은 하루 만에 무너질 수 있었다.
후판 창고에는 서두름이 없었다
오후 2시, 김민철은 대한플레이트의 박준호 대표를 찾아갔다.
절단공장 한쪽에는 고객사 규격에 맞춰 잘린 후판이 출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성마린텍으로 향할 조선기자재용 물량과 산업설비용 후판이 구역별로 나뉘어 쌓여 있었다.
“후판은 어떻습니까?”
김민철이 물었다.
“국산 SS400이 99만 원, 수입재는 95만 원 정도입니다. 좋은 조건이면 96만 원을 부르는 곳도 있고요.”
“거래는요?”
“많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열연처럼 가격을 흔들 정도는 아닙니다.”
박준호는 창고를 천천히 바라봤다.
후판 시장도 건설경기 부진을 피하지 못했다. 그러나 조선과 해양플랜트, 반도체 관련 산업설비에서 필요한 물량이 꾸준히 움직였다. 판매가 활발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가격을 깎아가며 재고를 밀어낼 정도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현재 판매가격에서는 일정 수준의 유통 마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예전 같으면 물량부터 늘렸을 겁니다.”
박준호가 말했다.
“가격이 더 오를 것 같으면 창고를 채웠고, 내려갈 것 같으면 빨리 팔았죠. 지금은 다릅니다. 주문받은 만큼만 가공하고, 결제 확인된 만큼만 출하합니다.”
대한플레이트는 과거의 유동성 위기 이후 현금흐름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었다. 시세 차익보다 살아남는 것이 먼저였다.
“후판 가격은 당분간 그대로 갈 것 같습니까?”
“제조사가 정책을 바꾸지 않고 공급도 지금 정도라면요. 수요가 약하다고 99만 원 밑으로 던질 이유도 없고, 그렇다고 100만 원을 넘어설 힘도 없습니다.”
김민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열연이 수요와 공급가격 사이에서 흔들리는 동안 후판은 좁은 길 위에서 균형을 잡고 있었다.
냉연도금 시장의 긴 침묵
다음 날 오전, 세광스틸서비스의 이유진 영업팀장은 진명모빌리티 구매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냉연강판과 도금강판의 7월 공급가격 자료가 놓여 있었다.
냉연강판 코일 95만 원. 산세강판 94만 원. 용융아연도금강판 107만~108만 원. 열연용융아연도금강판과 전기아연도금강판은 각각 105만 원.
지난주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최성훈 구매담당 이사는 자료를 넘기며 물었다.
“제조사 인상분은 언제 반영할 겁니까?”
이유진은 질문에 담긴 뜻을 알고 있었다. 가격을 올리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올리지 못하고 포기한 것인지를 묻는 말이었다.
“공급가격 인상 기조는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건 제조사 이야기고요. 유통가격은 그대로 아닙니까?”
“저가 재고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 재고가 언제 다 소진됩니까?”
이유진은 잠시 말을 고른 뒤 답했다.
“빠르면 이달 말입니다.”
최성훈은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우리도 재고를 늘릴 생각은 없습니다. 생산계획에 필요한 만큼만 발주하겠습니다.”
“가격이 오른 뒤에도 같은 말씀을 하실 겁니까?”
“가격이 실제로 오르면 그때 판단하죠.”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냉연도금 시장의 현재를 그대로 보여주는 침묵이었다. 판매자는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말했고, 구매자는 오른 것을 확인한 뒤 사겠다고 했다. 어느 쪽도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이유진은 회의실을 나서며 태산제철 장도현 실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수요업체 추가 구매 의사 없음. 기존 계약 물량만 집행. 인상분 반영은 저가 재고 소진 이후 가능할 것으로 판단.”
곧 답장이 왔다.
“판매가격 유지. 저가 대응 자제.”
그녀는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격을 유지하라는 말은 간단했다. 그러나 고객을 잃지 않으면서 가격을 지키는 일은 간단하지 않았다.
금요일의 결정
금요일 오후, 청람철강 회의실에 다시 사람들이 모였다.
열연 정품 판매가격을 96만 원으로 낮춰 물량을 확보하자는 의견과 97만 원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이 맞섰다. 영업팀은 거래량 감소를 걱정했고, 관리팀은 매입원가 이하 판매를 우려했다.
김민철은 마지막까지 말을 아꼈다.
“상무님, 어떻게 할까요?”
그는 창밖의 코일 창고를 바라봤다. 쌓여 있는 물량은 많지 않았다. 당장 현금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가격 반등을 확신할 수 있는 주문도 없었다.
김민철은 가격표의 96만 원에 그어져 있던 붉은 밑줄을 지웠다.
“정품은 97만 원을 기준으로 간다. 현금거래나 대량 계약은 개별 협의하고.”
“거래가 더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 있지.”
“그런데도 지킵니까?”
김민철은 펜 뚜껑을 닫았다.
“재고가 많으면 팔아야 하고, 자금이 막히면 현금부터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둘 다 아니야. 수요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먼저 가격을 내리면, 수요가 돌아와도 다시 올리지 못해.”
회의가 끝나갈 무렵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는 대진파이프였다. 열연을 사용하는 강관업체였다.
“김 상무님, 다음 주 생산계획이 조금 늘었습니다. 정품 열연 500톤 가능합니까?”
김민철은 가격표를 다시 바라봤다.
이번 주 내내 기다렸던 주문이었다. 그러나 500톤이 시장을 바꾸기에는 부족했다. 가격 반등의 시작일 수도 있었고,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질 일회성 발주일 수도 있었다.
“가능합니다.”
“가격은요?”
김민철은 잠시 멈췄다가 대답했다.
“톤당 97만 원입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상대방이 말했다.
“내부에서 검토하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는 그렇게 끝났다. 주문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김민철은 빈 회의실에 홀로 남아 가격표를 접었다. 제조사는 가격을 올렸고, 유통업체는 가격을 지키려 했으며, 수요업체는 구매를 미뤘다.
누구도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
7월의 철강시장은 뜨거운 공장과 차가운 주문서 사이에 멈춰 있었다.
이번 주 소설 속 시장 배경
| 품목 | 이번 주 유통가격 | 주간 흐름 | 시장 특징 |
|---|---|---|---|
| 정품 열연 SS275 | 96만~97만 원/톤 | 약 1만 원 하락 | 제조사 인상에도 수요 부진 |
| 수입대응재 GS | 94만~95만 원/톤 | 약 1만 원 하락 | 국산재 판매 확대 기대와 관망 공존 |
| 일반 수입 열연 | 약 92만 원/톤 | 약 1만 원 하락 | 최저수입가격 시행으로 저가 경쟁 제한 |
| 국산 후판 SS400 | 약 99만 원/톤 | 보합 | 조선·산업설비 수요가 가격 지지 |
| 수입 후판 | 95만~96만 원/톤 | 보합 | 공급과 거래 모두 안정적 |
| 냉연강판 CR | 약 95만 원/톤 | 보합 | 실수요업체 필요 물량 중심 구매 |
| 산세강판 PO | 약 94만 원/톤 | 보합 | 열연 약세에도 가격 유지 |
| 용융아연도금강판 GI | 107만~108만 원/톤 | 보합 | 저가 재고 소진 여부가 변수 |
| 열연용융아연도금강판 HGI | 약 105만 원/톤 | 보합 | 거래 부진 속 가격 유지 |
| 전기아연도금강판 EGI | 약 105만 원/톤 | 보합 | 제조사 인상분 반영 지연 |
이번 주 판재류 시장은 제조사의 가격 인상 의지와 실수요 부진 사이의 간극이 확인된 한 주였다. 열연은 전주보다 약 1만 원 하락했지만 시중 재고가 많지 않고 저가 수입재 유입도 제한돼 추가 하락 압력은 크지 않다는 평가다.
후판은 마진이 확보되는 현 가격대에서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갔다. 냉연도금재는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 방향을 확인하려는 태도를 보이면서 보합권에 머물렀다. 향후 가격의 분기점은 기존 저가 재고가 소진되는 7월 말 전후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회사와 인물은 모두 허구다. 가격·수급·통상정책 등 시장 배경은 해당 기간 국내 철강 시황 자료를 토대로 재구성했다.
다음 회 예고
《강철의 계절②》 철근 창고에 남은 3천 톤
제강사는 감산을 선언했고 철근 가격은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건설현장의 주문은 살아나지 않았다. 세륜건설의 결제가 늦어지면서 삼우철재 오세진 대표는 창고에 묶인 철근 3천 톤을 두고 선택해야 한다.
공급을 끊으면 공사장이 멈추고, 계속 출하하면 삼우철재가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