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걸리는 아래로 가라앉는 술이다. 시간이 지나면 맑은 부분은 위로 떠오르고, 곡식의 흔적은 바닥에 차분히 내려앉는다. 마시기 전 주전자를 흔드는 것은 그 서로 다른 층을 다시 하나로 섞는 일이다.
가만히 생각하면 철강시장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철강사와 제강사, 재압연사와 유통업체, 트레이더와 가공업체, 그리고 최종 수요가는 서로 다른 자리에 서 있다. 호황기에는 모두가 한 주전자 안에 있는 듯하지만, 시장이 어려워지면 이해관계에 따라 위아래로 나뉜다.
가격이 오를 때는 물량을 먼저 달라고 재촉하고, 가격이 내리면 재고 책임을 서로 미룬다. 주문이 넘칠 때는 오래된 거래처를 잊고, 주문이 끊기면 다시 안부를 묻는다. 그렇게 시장의 앙금은 주전자 바닥에 쌓인다.
그러나 막걸리는 앙금을 버리는 술이 아니다. 잘 흔들어 함께 마시는 술이다.
옛사람들은 막걸리에 다섯 가지 덕이 있다고 했다. 지나치게 취하지 않게 하고, 허기를 달래며, 지친 몸에 기운을 더하고, 풀리지 않던 일을 웃음으로 넘기게 하며, 함께 마신 사람들의 응어리를 풀어준다는 것이다.
이를 오늘날 철강업계의 언어로 바꾸면 막걸리의 오덕은 곧 사업의 오덕이 된다.
| 구분 | 막걸리의 의미 | 철강업계에 주는 뜻 |
|---|---|---|
| 일덕 | 취하되 정신을 잃지 않는다 | 시황이 좋아도 과도한 재고와 투자를 경계한다 |
| 이덕 | 허기를 달랜다 | 작은 거래라도 현금흐름과 공장 가동을 지탱한다 |
| 삼덕 | 지친 몸에 기운을 준다 | 어려울수록 거래처와 조직을 격려한다 |
| 사덕 | 막힌 일도 웃으며 풀어낸다 | 가격과 납기 갈등을 대화와 양보로 조정한다 |
| 오덕 | 함께 마시면 응어리가 풀린다 | 오래된 거래관계의 신뢰를 다시 잇는다 |
첫째 덕은 절제다.
술에 취하더라도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취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시장이 좋아도 판단력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뜻과 닮았다. 가격 상승기에 가장 위험한 것은 비싼 가격 자체가 아니다. 상승세가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 마음이다.
주문이 늘고 가격이 오르면 재고는 자산처럼 보인다. 그러나 흐름이 꺾이는 순간 재고는 금융비용과 평가손실을 품은 짐이 된다. 막걸리를 적당히 마셔야 다음 날 다시 논밭으로 나갈 수 있듯이, 사업도 적당한 이익과 감당할 수 있는 재고 안에서 이어가야 한다.
둘째 덕은 생존이다.
논두렁에서 마시던 막걸리는 단순한 술이 아니었다. 땀을 흘린 농부의 갈증을 풀고, 허기를 메워 다시 일어서게 하는 새참이었다. 철강시장에도 이런 거래가 있다. 큰돈을 남기지는 못하지만 공장의 가동을 이어주고, 창고의 물량을 순환시키며, 직원의 급여와 운송비를 마련해주는 거래다.
좋은 사업은 한 번의 대박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크지 않은 주문이라도 약속한 날짜에 납품하고, 받을 돈을 제때 받고, 다시 주문이 이어지게 하는 작은 순환에서 만들어진다. 막걸리 한 사발이 하루의 노동을 이어주듯, 안정된 현금흐름은 기업의 생명을 이어준다.
셋째 덕은 격려다.
시장이 어려워지면 사람들은 숫자만 바라본다. 판매량, 마진, 재고, 어음 만기일이 사람의 얼굴보다 먼저 보인다. 그러나 결국 숫자를 움직이는 것도 사람이다.
오랜 기간 철강 유통업에 종사한 한 관계자는 “불황에는 싼 가격보다 먼저 찾게 되는 사람이 있다”며 “급할 때 전화를 받아주고, 어려운 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하며,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하는 사람이 결국 거래를 이어간다”고 말했다.
지친 몸에 막걸리 한 사발이 힘을 보탰듯이, 힘든 시장에서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정확한 약속이 거래처를 붙들어준다. 가격은 경쟁사가 따라 할 수 있지만, 오랜 시간 쌓인 신뢰는 쉽게 흉내 낼 수 없다.
넷째 덕은 화해다.
철강 유통 현장에서는 하루에도 수많은 갈등이 생긴다. 발주한 규격이 다르고, 납기가 늦어지며, 운송 중 제품에 흠집이 생기기도 한다. 어제 계약한 가격과 오늘의 시황이 달라 서로의 표정이 굳기도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누구의 책임이 더 큰지를 따지는 일만이 아니다. 거래를 계속 이어갈 수 있는 해결책을 찾는 일이다. 막걸리 한 사발을 가운데 두고 굳었던 얼굴이 조금씩 풀렸던 것처럼, 사업에서도 때로는 계산서보다 사람의 마음을 먼저 펼쳐야 한다.
손해를 모두 떠안을 필요는 없다. 다만 상대가 다시 일어설 틈까지 막아버려서는 안 된다. 거래는 한 번의 승패로 끝나는 경기가 아니라 여러 계절을 함께 건너는 긴 동행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덕은 연대다.
막걸리는 혼자 고급 잔에 따라 마시는 술이라기보다 여러 사람이 한 상에 둘러앉아 나누는 술이었다. 좋은 옷과 높은 자리를 따지기보다 같은 사발에 술을 받아 마셨다. 그래서 막걸리는 서민의 술이었고, 노동의 술이었으며, 사람 사이에 놓인 벽을 낮추는 술이었다.
철강산업 역시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다. 철강사가 제품을 생산해도 이를 운송할 물류가 필요하고, 유통업체가 물량을 확보해도 가공업체와 수요가가 움직이지 않으면 시장은 돌지 않는다. 한 곳이 지나치게 많은 이익을 가져가면 다른 곳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공급망은 강한 기업 하나가 지탱하는 구조물이 아니다. 여러 기업이 서로의 하중을 나눠 받는 철골 구조물과 같다. 하나의 기둥이 약해지면 전체 구조도 흔들린다.
막걸리에는 오덕뿐 아니라 삼반도 있다고 전해진다. 놀고먹는 것을 멀리하고, 귀족적 허세를 거부하며, 신분과 계급의 벽을 낮춘다는 뜻이다.
| 구분 | 전통적 의미 | 오늘의 철강시장에 주는 의미 |
|---|---|---|
| 반유한적 | 일하지 않는 삶을 경계한다 | 현장과 고객을 떠난 탁상경영을 경계한다 |
| 반귀족적 | 허세와 특권을 거부한다 | 규모와 간판보다 실질적인 경쟁력을 중시한다 |
| 반계급적 | 함께 마시며 벽을 낮춘다 | 대기업과 중소업체가 상생할 구조를 만든다 |
첫 번째는 현장을 떠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철강 영업은 사무실의 시황표만으로 할 수 없다. 창고에서 어떤 규격이 빠지는지, 가공업체의 설비가 얼마나 돌아가는지, 수요가의 주문이 왜 줄었는지를 직접 살펴야 한다. 시장은 보고서보다 현장에서 먼저 움직인다.
두 번째는 허세를 버리라는 가르침이다.
매출 규모가 크다고 반드시 좋은 회사는 아니다. 많은 물량을 움직여도 이익이 남지 않고, 받을 돈을 회수하지 못하면 사업은 오래가지 못한다. 반대로 규모가 작아도 자기 분야에서 안정적인 고객과 건전한 현금흐름을 가진 기업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철강업에서 체면은 때때로 가장 비싼 비용이 된다. 잘못 산 재고를 인정하지 못하고, 손실을 감추려 더 큰 물량을 사들이며, 거래처의 신용이 나빠졌는데도 관계 때문에 출하를 계속하면 작은 균열이 큰 부실로 번진다.
세 번째는 높고 낮음보다 역할을 보라는 가르침이다.
제철소가 없으면 유통이 존재하기 어렵고, 유통이 없으면 소량·다품종 수요에 대응하기 어렵다. 가공업체가 없으면 철강재는 최종 제품의 모습으로 바뀌지 못하며, 건설·자동차·조선·기계산업이 움직이지 않으면 생산된 철강재는 갈 곳을 잃는다.
누가 위이고 누가 아래인지를 따지는 순간 공급망은 약해진다. 각자가 맡은 역할을 존중할 때 시장은 비로소 하나의 주전자처럼 섞인다.
명동의 어느 막걸리집에서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술값을 걱정하지 않고 모여 이야기했다고 한다. 주인은 술값을 재촉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막걸리 한 사발을 앞에 두고 시대의 아픔과 희망을 나눴다. 그곳에서 막걸리는 상품이 아니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였다.
철강시장도 결국 사람의 장사다.
가격은 매일 변하고 거래조건은 끊임없이 달라지지만, 사람에게 남는 기억은 의외로 단순하다. 어려울 때 물량을 조금 더 내준 회사, 결제일이 늦어질 때 먼저 사정을 설명한 거래처, 품질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피하지 않은 담당자, 위기에 빠진 협력업체를 무조건 버리지 않고 함께 해결책을 찾은 사람이다.
막걸리 주전자 바닥에 가라앉은 곡식 찌꺼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오래 마음에 남는다. 한 방울의 술에도 농부의 땀과 곡식의 무게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철강재 한 장, 철근 한 가닥, 선재 한 코일도 마찬가지다. 그 안에는 광산과 항만, 제철소의 불빛, 압연기의 굉음, 화물차 운전자의 밤길, 영업사원의 전화, 창고 작업자의 땀이 겹겹이 스며 있다.
시장에서는 때로 물량이 남고 재고가 쌓인다. 가격이 떨어지면 제품이 짐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제품을 함부로 다루는 순간, 우리는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사람의 노동까지 가볍게 여기게 된다.
막걸리는 화려하지 않다. 탁하고, 투박하며, 오래 두면 가라앉는다. 철강인의 삶도 그렇다. 겉으로 빛나는 날보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납기와 결제를 걱정하는 날이 더 많다.
그래도 주전자를 다시 한번 흔들면 가라앉았던 곡식이 일어난다. 사람도, 회사도, 시장도 그렇다. 어려울수록 서로를 흔들어 깨우고, 나눌 것을 나누며, 다시 한 상에 둘러앉아야 한다.
막걸리의 오덕은 절제하고, 살리고, 격려하고, 화해하며, 함께하라는 뜻이다. 삼반은 게으름과 허세와 계급의 벽을 거부하라는 뜻이다.
오늘의 철강시장에 이보다 더 절실한 덕목이 있을까.
가격이 흔들리고 주문이 줄어드는 밤, 오래된 거래처와 막걸리 한 사발을 나누게 된다면 먼저 잔을 채우기보다 서로의 마음을 살펴볼 일이다. 술보다 귀한 것은 그 자리에 함께 앉아 있는 사람이고, 한 번의 이익보다 오래 남는 것은 어려운 시절을 함께 건넌 기억이기 때문이다.
철은 불을 견디며 단단해지고, 사람은 어려움을 함께 견디며 깊어진다. 막걸리 한 사발 속에는 그 평범하지만 오래된 진리가 조용히 가라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