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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계절 ㊵ — 철근은 먼저 신호를 보낸다

강철의 계절 ㊵ — 5천원의 신호

이 작품은 실제 철강시장 자료를 모티프로 창작한 픽션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과 일부 기업·사건은 허구이며, 실제 기업·단체·사건과 관련이 없다. 실제 기업명은 공개된 시장정보와 가격정책을 설명하기 위한 범위에서만 사용했다.


부제: 철근

2026년 9월 둘째 주, 경기권 철근 유통사


이상신호

목요일 오전, 철근 유통사 대표 정민석은 전날보다 5천원 오른 거래 전표 한 장을 한참 들여다봤다. 상승 폭만 보면 미미했다. 그러나 몇 주째 내려가기만 하던 가격이 멈추고 되돌아섰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같은 시간 제강사들은 SD400 유통향 출하를 조이고 있었고, 창고에는 수입 철근 재고가 남아 있었다. 시장은 오르는 것도 아니고 내리는 것도 아닌 이상한 정지 상태에 들어갔다.


영업부장 이재훈이 말했다. “국산은 84~85만원대 얘기가 여전히 많습니다. 다만 금요일 들어 5천원 정도 반등한 거래가 잡혔습니다.” 구매팀장 김아영이 반박했다. “수입재는 79~80만원대가 남아 있습니다. 국산 공급을 줄여도 수입재가 버티면 큰 폭 반등은 어렵습니다.” 민석이 물었다. “수입재 재고는?” “인천 창고에 3만톤대가 있습니다. 전주보다 줄었지만 아직 충분합니다.”


재무이사 백승호는 다른 숫자를 봤다. “가격보다 채권이 더 문제입니다. 건설사 두 곳이 결제를 늦추고 있습니다. 지금 매입을 늘려 반등에 베팅하면 현금이 잠깁니다.” 재훈이 말했다. “그렇다고 물량을 안 잡으면 제강사 출하 제한이 길어졌을 때 고객을 놓칩니다.” 승호가 잘라 말했다. “가격이 오를지보다 돈을 받을 수 있는지를 먼저 봐야 합니다.”


조건의 충돌

오전 열 시, 중견 건설사 현장 구매담당자가 전화를 걸었다. “다음 주 400톤 필요합니다. 지금 단가로 확정해 주세요.” 재훈은 민석을 바라봤다. 민석이 물었다. “결제조건은 기존 60일입니까?” “네. 변경 어렵습니다.” “그 조건이면 물량 전부는 어렵습니다.” 상대가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데는 준다는데요?” “다른 데 조건과 비교하셔도 됩니다. 우리는 출하 가능 물량과 신용한도를 같이 봅니다.”


전화를 끊자 재훈이 불만을 터뜨렸다. “400톤을 놓치면 매출이 큽니다.” 승호가 말했다. “매출이 아니라 미수금 400톤이 될 수도 있어.” 민석은 두 사람을 말렸다. “둘 다 맞아. 그래서 나눠야 한다.” 그는 400톤 가운데 200톤만 기존 조건으로, 나머지 200톤은 중도금 또는 보증 조건을 요구하자고 했다.


점심 무렵 구매팀 아영에게 제강사 영업담당의 연락이 왔다. SD400 일반 유통향 물량 배정이 줄어들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정확한 출하량은 아직 확정이 아니지만, 이번 주처럼 쉽게 받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아영이 전화를 끊고 말했다. “이제 정말 물량이 부족해질 수도 있어요.” 재훈이 바로 말했다. “그럼 오늘 더 사야죠.” 승호는 고개를 저었다. “수입재 79~80이 있는데 무슨 근거로?”


전환점은 오후 두 시였다. 현장 한 곳에서 수입산 사용 승인 여부를 두고 문제가 생겼다. 구조 검토상 국산 규격을 요구하는 구간이 있어, 싸다고 해서 수입재로 전량 대체할 수 없었다. 재훈이 말했다. “결국 필요한 사람은 국산을 사야 합니다.” 아영이 덧붙였다. “맞지만 모든 현장이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러니 국산과 수입을 섞어서 재고 전략을 가져가야 합니다.”


전환점

민석은 창고로 내려갔다. 국산 SD400 묶음과 수입재가 서로 다른 구역에 쌓여 있었다. 창고반장에게 물었다. “국산 D10 회전일수는?” “평균 18일입니다. 수입재는 31일입니다.” “그럼 수입재가 더 늙고 있네.” “가격은 싸도 찾는 현장이 제한적입니다.” 이 대답이 민석의 결정을 굳혔다.


오후 네 시 회의에서 그는 매입안을 확정했다. 국산 SD400은 예상 판매량의 70%까지만 확보하고, 수입재 추가 매입은 중단한다. 기존 수입재는 가격 민감 현장에 우선 판매하되 현금 또는 짧은 결제조건을 붙인다. 국산은 승인 민감 현장과 장기 거래처에 배분하되 여신한도를 넘는 출하는 막는다. “가격이 5천원 올랐다고 추격매수하지 않는다.” 민석이 말했다. “다만 공급 제한이 이어질 때 고객을 놓치지 않을 정도만 잡는다.”


재훈이 물었다. “그럼 400톤 현장은?” “200톤은 확정. 나머지는 결제조건 바뀌면 준다.” “거래처가 싫어할 텐데요.” “싫어해도 회사가 살아야 다음 달에도 물건을 줍니다.” 승호는 처음으로 웃었다. “그 문장은 재무팀에서 자주 쓰고 싶군요.”


그날 저녁 계약서에는 단가보다 결제조건과 분할출하 조항이 더 길게 적혔다. 5천원의 반등은 시장이 바닥을 찍었다는 확정 신호가 아니었다. 다만 공급 조절이 시작됐고, 수입재가 여전히 남아 있으며, 수요처 신용이 더 중요해졌다는 경고였다. 민석은 매입을 늘리지도 완전히 줄이지도 않았다. 그가 산 것은 가격 상승 가능성이 아니라, 다음 주문을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선택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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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민석은 영업팀에 한 가지 숙제를 줬다. 거래처별로 국산 철근이 반드시 필요한 현장과 수입재로 대체 가능한 현장을 구분하라는 것이었다. 재훈은 처음엔 불평했다. “그걸 다 확인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민석이 말했다. “그 시간보다 잘못 산 재고를 몇 달 들고 있는 시간이 더 비싸.”


조사 결과는 예상보다 극단적이었다. 구조설계와 승인 조건 때문에 국산을 요구하는 현장이 있는 반면, 가격만 맞으면 수입재를 쓸 수 있는 현장도 많았다. 아영이 말했다. “수입재 79~80만원이 국산 가격을 눌러도 모든 수요를 대체할 수 있는 건 아니네요.” 승호가 덧붙였다. “그러니 국산 재고도 필요하지만, 무조건 많이 살 이유도 없는 겁니다.”


제강사의 공급 조절은 유통사 내부의 판매 방식도 바꿨다. 예전에는 주문이 들어오면 먼저 물량부터 잡았지만 이제는 여신한도와 결제일을 동시에 확인했다. 재훈이 한 거래처에 말했다. “이번에는 100톤만 먼저 출하하겠습니다.” 거래처가 항의했다. “지난달엔 200톤도 바로 줬잖아요.” “지난달과 지금은 공급 상황도 다르고 귀사의 미수금도 다릅니다. 결제 확인되면 추가 출하하겠습니다.”


가격이 5천원 반등했다는 소식이 퍼지자 일부 유통업체는 선매입에 나설 움직임을 보였다. 민석은 따라가지 않았다. “반등 한 번으로 추세를 판단하지 않는다.” 그는 직원들에게 과거 재고 손실 사례를 보여줬다. 바닥이라고 생각해 매입을 늘렸다가 수요가 살아나지 않아 몇 달 뒤 더 싸게 팔았던 기록이었다.


대신 그는 공급 안정성을 샀다. 거래관계가 오래된 제강사 대리점과 월 최소 물량을 합의하고, 필요할 때 우선 배정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단가는 최저가가 아니었지만 갑작스러운 품절 위험을 낮출 수 있었다. 아영이 말했다. “가격을 사는 게 아니라 배정권을 사는 셈이네요.” “맞아. 지금은 그게 더 중요해.”


주말 직전 현장 발주 하나가 취소됐다. 만약 목요일에 예상 물량 전부를 선매입했다면 그 물량이 그대로 재고가 될 상황이었다. 승호는 말했다. “이번엔 보수적으로 간 게 살렸습니다.” 재훈도 인정했다. “매출 기회를 놓친 줄 알았는데, 취소된 주문을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네요.”


민석은 직원들에게 마지막으로 강조했다. 철근 시장에서 가격은 공급정책과 수입재, 건설 수요와 현장 승인, 신용조건이 한꺼번에 움직인 결과다. 5천원 반등은 방향을 알려주는 힌트일 뿐 확정된 추세가 아니다. 회사는 그 힌트에 전 재고를 거는 대신, 필요한 만큼만 움직이고 현금이 돌아오는 속도를 지키기로 했다.


금요일 오후 민석은 거래처 두 곳의 입금이 확인되자 추가 출하를 승인했다. 재훈은 “결제조건을 세게 잡으면 고객이 떠날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빨리 입금하는 곳도 있네요”라고 말했다. 승호는 “신용이 좋은 고객에게 물량을 우선 배정한다는 신호가 분명해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가격이 약한 시장일수록 현금흐름을 지키는 거래처의 가치가 더 커졌다.


아영은 제강사와 다음 주 배정 물량을 협의하면서도 최대치로 신청하지 않았다. 필요한 규격과 예상 판매량만 요청했다. “예전 같으면 혹시 몰라 더 달라고 했을 텐데 이번엔 회전 가능한 만큼만 받겠습니다.” 민석이 말했다. “부족하면 기회를 잃지만 남으면 현금이 묶여. 지금은 둘 사이 균형이 중요해.”


철근 가격이 다시 내려갈 수도, 공급조절이 먹혀 더 오를 수도 있었다. 회사는 어느 쪽도 확신하지 않았다. 대신 국산과 수입재의 역할을 나누고, 현장 승인 여부와 여신조건을 기준으로 판매했다. 5천원의 반등은 결국 회사에 ‘더 사라’는 명령이 아니라 ‘조건을 다시 보라’는 신호가 됐다.


민석은 다음 주부터 판매회의의 첫 화면을 매출액이 아니라 회수예정표로 바꾸라고 지시했다. 재훈은 처음엔 영업 분위기가 위축될까 걱정했지만, 민석은 “팔지 말자는 게 아니라 받을 수 있는 만큼 팔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요가 약한 철근시장에서는 한 건의 부실채권이 몇 달의 정상 마진을 지울 수 있었다. 가격보다 신용이 먼저라는 원칙을 조직 전체가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 판단은 다음 주 첫 거래와 재고회전 결과를 다시 확인해 조정하기로 했다.

현장에서는 이 결정을 일주일짜리 임시대응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운영원칙으로 남기기로 했다. 다음 실행 때는 실제 판매속도와 회수일, 재고연령을 비교해 기준을 다시 조정한다.


그날의 가격

품목가격주간 변동
국산 철근(SD400 D10 중심)84~85만원대/톤주 후반 약 5,000원 반등
수입 철근79~80만원/톤 수준원자료상 약세
제강사 고시가격 예시89만원/톤원자료상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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