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U가 CBAM 적용범위를 철강·알루미늄 하공정 제품으로 확대하는 입법을 본격화하고 있다.
집행위 180개, 이사회 200개, 유럽의회 환경위 457개 안이 맞서는 가운데 한국 철강사뿐 아니라 가공·기계·부품 수출업체까지 탄소배출량 증빙과 조달 추적 부담이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다.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철강 원소재 중심의 규제에서 철강을 투입해 만든 하공정 제품으로 빠르게 확장되는 국면에 들어섰다. 유럽의회 입법관측 시스템에는 9월 15일 CBAM 하공정 확대안에 대한 의회 표결 결과가 기록됐으며, 최종 규정은 집행위원회·이사회·유럽의회가 제시한 서로 다른 범위를 놓고 후속 협의를 거쳐 확정될 전망이다.
현재 공식 자료에서 확인되는 범위 차이는 상당하다. EU 집행위원회는 2025년 12월 철강·알루미늄 함량이 높고 탄소누출 위험이 큰 하공정 제품 180개를 CBAM에 추가하는 안을 제안했다. EU 이사회는 2026년 6월 일반접근에서 이를 200개 금속집약 산업·건설·전기장비 제품으로 확대했다. 유럽의회 환경·기후·식품안전위원회(ENVI)는 7월 보고서에서 적용대상을 457개 제품으로 더 넓히는 입장을 채택했다. 유럽의회 입법관측 시스템에는 9월 15일 본회의 표결 결과가 기록돼 있지만, 9월 17일 현재 절차 페이지는 아직 1독회 의회 입장 확정 대기 상태로 표시돼 있어 최종 협상문과 적용 품목표는 추가 확인이 필요한 단계다.
철강 자체에서 '철강이 들어간 제품'으로 규제축 이동
이번 입법의 핵심은 CBAM의 규제 대상이 열연·냉연·후판·강관 등 철강재 자체에서 철강을 투입해 만든 하공정 제품으로 내려온다는 데 있다. 집행위원회가 제안한 180개 하공정 제품은 철강 또는 알루미늄 함량이 평균 79%에 달하며, 약 94%가 산업 공급망에 사용되는 제품으로 설명됐다. 이사회 역시 산업·건설·전기장비 등 금속집약 제품을 대상으로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CBAM은 단순히 유럽으로 철강재를 직접 수출하는 철강사만의 통상 이슈가 아니게 된다. 철강을 원재료로 사용해 기계·설비·건설용 부품과 각종 산업재를 만들어 EU에 판매하는 가공업체와 수요산업까지 배출량 산정과 소재 추적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특히 한국에서 최종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투입 소재의 생산국, 제조공정, 내재배출량을 얼마나 정확하게 추적할 수 있는지가 통관과 원가관리의 새로운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 구분 | 제시 범위 | 주요 내용 | 현재 의미 |
|---|---|---|---|
| EU 집행위원회 | 하공정 제품 180개 | 평균 철강·알루미늄 함량 79%, 고탄소누출 위험 품목 중심 | 입법 출발점 |
| EU 이사회 | 추가 200개 | 금속집약 산업·건설·전기장비 제품 확대 | 회원국 협상기준 |
| 유럽의회 ENVI | 457개 | 적용범위 확대와 우회방지·감시 강화 제안 | 의회 측 확대안의 기준 |
| 시행 방향 | 2028년부터 확대 추진 | 하공정 제품을 CBAM 적용대상에 단계적으로 편입 | 최종 품목·규칙 협상 필요 |
한국산 철강의 직접수출보다 '가공 후 EU 수출'이 새 변수
한국 철강업계에는 두 갈래의 영향이 예상된다. 먼저 EU에 철강재를 직접 공급하는 철강사는 기존 CBAM 대응에 더해 고객사가 하공정 제품 단계에서 요구하는 배출량 데이터와 소재 이력 관리 수준이 높아질 수 있다. 유럽의 가공업체가 완제품의 CBAM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저탄소 소재와 검증 가능한 공급망을 우선하면, 소재 공급 단계에서 제품별 탄소정보가 가격과 거래조건의 일부로 편입될 가능성이 커진다.
두 번째는 한국의 재압연사·가공업체와 기계·부품 수출업체다. 중국이나 제3국에서 열연, 후판, 반제품을 조달해 한국에서 가공한 뒤 EU에 수출하는 거래는 최종 제품의 원산지와 별개로 투입 소재의 탄소정보를 정교하게 관리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최종 규정에서 어떤 CN 코드가 포함되고, 복합제품의 철강 함량과 내재배출량을 어떤 방식으로 산정하는지가 실질적인 비용을 좌우하게 된다.
트레이더와 유통업체 역시 단순 가격경쟁력만으로 공급선을 선택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동일 가격이라도 생산 이력과 배출량 데이터가 명확한 소재가 EU향 가공 수출에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가치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저가 수입재를 조달해 한국에서 가공하는 비즈니스는 소재 단계에서 탄소정보 확보가 어렵다면 통관 리스크와 행정비용이 커질 수 있다.
우회방지 강화…품목코드 변경만으로 규제 피하기 어려워질 듯
EU는 이번 확대안에서 단순 품목 추가뿐 아니라 CBAM 우회방지 장치도 함께 강화하고 있다. 집행위원회는 특정 제품의 구성과 배출량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추가 보고 의무를 제안했고, 유럽의회 환경위는 고위험 품목과 원산지의 우회 가능성을 평가하는 기준, 이른바 자원 재배치(resource shuffling) 등에 대한 규율을 더 구체화했다.
이는 철강재를 한 단계 가공하거나 제품 분류를 변경해 CBAM 적용을 피하는 거래를 줄이려는 방향으로 읽힌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단순한 HS·CN 코드 관리보다 실제 투입 소재와 제조공정에 대한 증빙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해질 수 있다. 다만 구체적인 적용방식은 최종 규정과 시행세칙이 확정된 뒤 판단해야 한다.
가격 영향은 '관세율'보다 탄소원가와 조달선 재편에서 나타날 가능성
CBAM 확대는 전통적인 반덤핑 관세나 세이프가드처럼 특정 국가에 일정 세율을 바로 부과하는 조치와 성격이 다르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철강 가격이 일률적으로 오르는 구조로 보기는 어렵다. 다만 EU 수입업체와 하공정 제조업체가 탄소비용과 증빙 부담을 구매가격에 반영하면 저탄소 철강재와 추적 가능한 공급망에 프리미엄이 붙고, 탄소집약도가 높거나 데이터가 불충분한 소재는 할인 또는 거래기피 압력을 받을 수 있다.
한국 철강사에는 제품 자체의 탄소집약도를 낮추는 것과 동시에 고객에게 제공할 배출량 데이터의 신뢰성을 높이는 작업이 중요해진다. 재압연사와 가공업체는 원소재 구매단계에서 배출량 자료를 함께 확보하는 계약관행이 필요해질 수 있으며, 트레이더는 가격·납기와 함께 탄소데이터 제공 가능 여부를 공급선 평가항목으로 포함해야 할 가능성이 커진다.
앞으로 확인할 핵심은 '최종 457개 여부'가 아니라 실제 품목표
시장에서는 유럽의회 환경위의 457개 확대안이 주목받고 있지만 현재 단계에서 이를 최종 확정 품목수로 받아들이는 것은 이르다. 집행위원회 180개, 이사회 200개, 유럽의회 측 확대안 사이에 차이가 크기 때문에 실제 기업 영향은 최종 협상에서 확정될 CN 코드와 산정규칙을 봐야 한다.
철강정보원이 후속으로 확인해야 할 사안은 첫째 한국의 기계·자동차부품·건설기자재 등 EU 수출품 가운데 실제 추가 대상이 되는 CN 코드, 둘째 철강 함량과 내재배출량 산정 기준, 셋째 제3국산 철강을 한국에서 가공한 제품의 데이터 추적 방식, 넷째 중소 수출업체의 검증·보고 의무, 다섯째 EU 바이어들이 2027년 장기계약부터 탄소데이터 제공을 계약조건에 반영하는지 여부다.
이번 CBAM 확대는 당장 한국산 철강에 새로운 50% 관세를 붙이는 성격의 조치는 아니다. 그러나 규제의 경계가 소재에서 가공품으로 내려온다는 점에서 한국 철강 공급망 전체에 미치는 범위는 오히려 더 넓을 수 있다. 앞으로 EU향 거래에서는 '얼마에 공급할 수 있는가'와 함께 '그 제품 안에 들어간 철강의 탄소정보를 어디까지 증명할 수 있는가'가 시장접근 조건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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