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22일 (수)

[강철의 계절⑤] 자동차 공장이 출고지시를 멈춘 날

철강사와 완성차업체가 정한 자동차강판 가격, 가공센터는 소재보다 가공량으로 수익을 낸다

생산계획이 줄자 사급 물량과 가공수익이 동시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월요일 오전 7시, 세광스틸서비스 제2공장의 슬리터는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기계에는 태산제철이 생산한 자동차용 냉연강판 코일이 걸려 있었다. 코일은 완성차업체인 대한자동차가 지정한 규격에 맞춰 절단된 뒤 1차 협력사인 진명모빌리티로 출하될 예정이었다.

겉으로 보면 세광스틸서비스가 냉연강판을 매입해 진명모빌리티에 판매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거래의 실질은 달랐다.


자동차용 강판의 가격과 공급물량은 태산제철과 대한자동차가 직접 협상해 결정했다. 계약기간은 통상 6개월이나 1년이었다. 시장 상황에 따라 분기 단위 협상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일반적인 방식은 아니었다.

세광스틸서비스는 계약물량을 배정받아 슬리팅과 시어링, 포장, 보관, 운송을 담당했다. 소재가격을 자유롭게 정해 판매하는 유통업체라기보다 철강사와 자동차사 사이의 공급망을 움직이는 가공 거점에 가까웠다.

세광스틸서비스가 받는 돈도 냉연강판 유통마진이 아니었다.

가공규격과 작업 난도, 수율, 포장, 보관 및 운송조건을 반영해 정한 사급 단가가 수익의 중심이었다. 가공량이 늘면 수익이 늘었고, 물량이 줄면 소재가격이 그대로여도 손익이 나빠졌다.


오전 8시가 가까워졌을 때 생산관리팀장이 이유진 영업팀장에게 다가왔다.

“진명모빌리티 2차 출고지시가 아직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오늘 오전에 180톤 출하하기로 했잖아요.”

“완성차 생산계획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일단 대기해 달랍니다.”

이유진은 작업계획표를 확인했다.

태산제철에서 배정받은 소재는 이미 창고에 들어와 있었다. 계약된 자동차강판 가격은 당장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출고지시가 미뤄지면 코일은 창고에 남고 가공라인의 작업량은 줄어든다.

사급 거래에서는 소재가격보다 물량의 흐름이 더 직접적인 문제였다.


자동차강판은 유통가격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오전 9시 영업회의가 시작됐다.

화면에는 국내 냉연·도금강판 시장자료가 떠 있었다. 일반 유통시장에서 냉연강판은 톤당 95만 원, 산세강판은 94만 원 수준이었다. 용융아연도금강판은 107만~108만 원, 열연용융아연도금강판과 전기아연도금강판은 각각 105만 원 안팎이었다.


그러나 이유진은 자료의 제목부터 바꿨다.

‘자동차강판 가격’이라고 적혀 있던 부분을 ‘일반 유통재 가격’으로 수정했다.

“이 가격을 진명모빌리티 자동차 부품용 물량에 그대로 적용하면 안 됩니다.”


이유진이 말했다.

“자동차용 주력 물량은 대한자동차와 태산제철이 장기계약으로 결정합니다. 우리가 유통가격을 보고 소재 판매가격을 올리거나 내리는 구조가 아닙니다.”

영업부장이 물었다.

“그렇다면 유통가격은 자동차강판 거래와 관계가 없습니까?”

“완전히 무관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적용되는 방식이 다릅니다.”


자동차용 강판의 대부분은 완성차업체와 철강사가 직접 계약한다. 이후 물량은 지정된 가공센터나 1차 협력사에 배정된다. 가공센터는 정해진 작업요율에 따라 소재를 절단·가공해 납품한다.

유통시장에서 자동차 부품업체로 들어가는 물량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계약물량이 부족하거나 긴급 생산이 발생한 경우, 또는 장기계약에 포함되지 않은 규격과 소량 품목이 필요할 때 유통재가 보완적으로 사용된다.


이때 가격은 일반 유통시세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자동차사가 정한 사급 기준가격과 유통재 조달가격, 품질인증 여부, 가공비, 물류비, 긴급 납품조건 등을 함께 반영한다.

“사급 단가가 고정돼 있는 동안 가공원가가 오르면 어떻게 됩니까?”


생산관리팀장이 물었다.

“그 차이는 우리가 부담할 가능성이 큽니다.”

“전기료와 인건비가 올라도 말입니까?”

“계약을 다시 협상하기 전까지는 그렇습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자동차용 강판의 소재가격은 철강사와 자동차사의 협상으로 결정되지만, 가공센터의 수익성은 별도의 문제였다. 같은 사급 단가를 적용하더라도 가공물량과 수율, 작업 횟수, 소량 다품종 비중에 따라 실제 수익은 크게 달라졌다.


가격이 아니라 물량이 20% 줄었다

오전 10시 30분, 이유진은 진명모빌리티 최성훈 이사와 화상회의를 시작했다.


최성훈 뒤편 화면에는 다음 달 자동차 부품 생산계획이 표시돼 있었다.

“대한자동차에서 일부 차종의 생산일정을 조정했습니다.”


최성훈이 말했다.

“세광스틸서비스에서 가공하는 냉연·도금강판 물량도 당분간 20% 정도 줄여야 합니다.”

“계약물량 자체가 줄어드는 겁니까, 출고시기만 미뤄지는 겁니까?”

“현재로서는 출고 순연입니다. 다만 다음 달 생산계획이 다시 낮아지면 배정물량도 조정될 수 있습니다.”


이유진에게는 중요한 차이였다.

출고가 며칠 늦어지는 것이라면 생산일정을 조정하면 된다. 그러나 월간 배정물량이 줄어들면 가공매출이 감소한다. 이미 확보한 인력과 설비, 창고는 그대로인데 작업량만 줄어드는 것이다.

“사급 단가는 그대로 적용됩니까?”

“단가는 기존 기준을 유지합니다.”

“물량이 20% 줄면 같은 단가로는 고정비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소재가격이 바뀐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희 수익은 소재가격이 아니라 가공량에서 나옵니다.”


최성훈은 잠시 말을 멈췄다.

진명모빌리티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완성차업체의 생산계획이 줄면 부품 납품량도 감소한다. 소재가 사급으로 공급되더라도 프레스와 용접라인의 가동률이 떨어지고 고정비 부담이 커진다.

철강사에서 자동차사, 가공센터, 1차 협력사로 이어지는 공급망은 하나의 생산계획으로 묶여 있었다.

완성차 조립라인이 하루 멈추면 그 영향은 부품사와 가공센터까지 동시에 내려왔다.

“우선 이번 주 출고량부터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최성훈이 말했다.

“다만 긴급 증산에 대비해 소재는 보관해 주십시오.”

이유진이 되물었다.

“출고는 미루면서 재고는 그대로 유지해 달라는 겁니까?”

“생산계획이 회복되면 바로 투입해야 합니다.”

“보관기간이 길어지면 창고비와 금융비용이 발생합니다.”

“대한자동차 구매팀과 협의해 보겠습니다.”

확답은 없었다.


사급 단가는 같아도 작업원가는 달랐다

오후에 열린 생산회의에서는 가공수율이 문제가 됐다.

같은 냉연강판이라도 원코일 폭과 부품용 소재의 절단 폭이 맞지 않으면 가장자리 손실이 늘어난다. 대량 규격을 연속 생산하면 작업효율이 높지만, 여러 규격을 소량으로 나눠 가공하면 코일 교체와 칼날 조정에 더 많은 시간이 든다.

생산관리팀장이 최근 작업실적을 표로 정리했다.


구분기존 작업조건변경된 작업조건가공센터 영향
월간 배정물량정상 계획 기준약 20% 감축 검토가공매출 감소
작업 구성대량 연속가공소량·분할가공 증가생산성 저하
소재 보관정상 회전출고 순연창고 부담 확대
사급 단가계약요율 적용기존 요율 유지원가 상승분 반영 제한
긴급 대응계획 출고 중심생산계획 변경 가능성 확대대기 인력·설비 필요


“단가는 그대로인데 작업 횟수는 늘었습니다.”

생산관리팀장이 말했다.

“물량을 한 번에 가공하면 되는 것을 세 번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출고일이 자꾸 바뀌니 포장도 다시 해야 합니다.”

“수율은 어떻습니까?”

“차종별 소량 규격이 늘면서 평균 수율도 낮아졌습니다.”


사급 단가는 톤당 일정하게 책정돼 있었지만 모든 톤의 작업원가가 같지는 않았다. 연속가공이 가능한 대형 물량과 잦은 규격 교체가 필요한 소량 주문을 같은 요율로 처리하면 가공센터의 실제 마진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유진은 자동차사와 철강사가 소재가격을 협상하는 동안 가공센터가 놓치기 쉬운 비용을 적어 내려갔다.

보관기간, 작업 전환시간, 포장재, 재가공, 긴급 운송, 수율, 스크랩 처리, 품질 대응이었다.

사급 단가는 단순한 가공비가 아니었다.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가공센터가 감당하는 업무 전체의 가격이었다.


부족한 40톤은 유통시장에서 구해야 했다

수요일 오후, 진명모빌리티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감축한다던 차종과 다른 수출차종의 생산계획이 갑자기 늘었다. 특정 규격의 전기아연도금강판 40톤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요청이었다.


문제는 해당 규격이 이번 사급 배정물량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태산제철 추가 배정이 가능합니까?”

이유진이 물었다.

구매담당자는 고개를 저었다.

“다음 생산까지 기다리면 납기를 맞출 수 없습니다. 유통재를 찾아야 합니다.”


이때부터 계산방식이 달라졌다.

사급 물량이라면 철강사와 자동차사가 정한 가격체계 안에서 소재가 움직인다. 그러나 유통시장에서 긴급 조달하는 물량은 현재 시세를 적용해야 한다. 여기에 자동차 부품용 사용 가능 여부와 재질증명, 표면품질, 도금량, 폭 공차를 확인해야 했다.

같은 EGI라는 이유만으로 아무 제품이나 사용할 수는 없었다.


유통시세는 톤당 105만 원 안팎이었지만 실제 조달가격은 보유업체와 규격, 수량, 납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다. 자동차사 승인 없이 일반 유통재를 임의로 대체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유통재를 사급 기준가격으로 공급해 달라고 하면 손실입니다.”

구매담당자가 말했다.


이유진도 알고 있었다.

유통재 가격이 사급 기준보다 높으면 그 차액을 누가 부담할지 정해야 한다. 반대로 유통가격이 낮더라도 자동차용 소재의 승인과 품질보증, 긴급 가공·운송비를 고려하면 단순 비교는 어려웠다.


결국 세광스틸서비스는 진명모빌리티와 협의해 소재비 차액과 긴급 가공·운송비를 별도로 정산하는 조건으로 물량을 조달하기로 했다.

자동차 벤더사로 유통재가 흘러가는 것은 바로 이런 경우였다.

주력 물량을 대신하는 상시 공급이 아니라 계약물량의 공백을 메우는 보완재였다.


미국 관세 판정이 사급 단가를 바로 바꾸지는 않는다

목요일에는 미국의 한국산 냉연강판과 도금강판 연례재심 결과가 전해졌다.

업체별 덤핑마진이 달라지면서 국내 철강사별 미국 수출여건에도 차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일부 철강사의 수출 부담이 낮아질 경우 미국향 판매를 확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이 소식이 국내 자동차용 강판 가격을 즉시 바꾸는 것은 아니었다.

자동차강판 가격은 이미 체결된 반기 또는 연간 계약에 따라 움직인다. 미국 수출환경이 좋아졌다고 다음 날 사급 기준가격이 오르는 구조가 아니었다.

다만 다음 계약협상에서는 변수가 될 수 있었다.


철강사가 수출 확대와 내수 공급을 비교해 판매전략을 바꾸거나, 자동차사가 국제 철강가격과 환율, 원료비, 수출가격을 근거로 가격협상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가공센터가 주목한 것은 소재가격보다 물량 배정이었다.

수출이 늘어 내수 공급에 변화가 생기면 긴급 유통재 조달이 어려워질 수 있다. 반대로 자동차 생산이 부진한 상태에서 공급만 충분하다면 가공센터 간 물량 확보 경쟁이 심해질 수 있었다.

미국의 관세 판정은 당장의 사급 단가보다 다음 계약과 공급배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기 변수였다.


다시 돌아간 슬리터

금요일 오전, 대한자동차가 보류했던 출고지시 일부를 재개했다.

감축 예정 물량 가운데 절반은 예정대로 생산하기로 했다는 통보였다.


생산관리팀장이 이유진에게 물었다.

“라인을 다시 정상 편성할까요?”

“다음 주 생산계획이 확정된 겁니까?”

“아닙니다. 이번 물량만 우선 출고하라는 지시입니다.”

이유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가공 재개를 승인했다.


멈춰 있던 슬리터가 다시 움직였다. 냉연강판이 빠르게 풀리면서 여러 폭의 자동차 부품용 소재로 절단됐다.

기계는 정상적으로 돌아갔지만 다음 주 물량은 여전히 확정되지 않았다.

소재가격도, 사급 단가도 바뀌지 않았다. 가격표만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한 주였다.


그러나 세광스틸서비스의 손익은 이미 달라지고 있었다.

가공량이 줄었고 보관기간이 늘었다. 소량 분할작업과 긴급 대응이 많아지면서 톤당 작업원가도 높아졌다. 사급 단가가 유지됐다는 사실이 수익성까지 유지됐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유진은 다음 계약협상 자료의 제목을 적었다.

‘사급 단가 인상 요청’이 아니었다.

‘공급망 유지비용의 재산정’이었다.

자동차용 냉연·도금강판 시장에서는 철강사가 소재가격을 정하고 자동차사가 생산계획을 결정한다.

그 사이에서 가공센터가 지켜야 할 것은 단순한 판매마진이 아니었다.

멈추지 않는 공급망이었다.



이번 주 소설 속 시장 구조

구분일반적인 거래방식가격·수익 결정요인
철강사–완성차업체6개월 또는 1년 단위 직접계약 중심원료비, 국제가격, 환율, 수급, 품질 및 공급조건
가공센터·서비스센터계약물량을 배정받아 절단·가공·보관·운송사급 단가, 가공량, 수율, 작업 난도, 물류조건
자동차 1차 협력사완성차 생산계획에 맞춰 소재 인수·부품 생산사급 기준, 부품 납품단가, 생산량
유통재 보완조달부족 물량·긴급 규격·소량 품목 중심유통가격, 사급 기준가격, 품질승인, 가공·운송비


자동차용 냉연·도금강판의 대형 물량은 일반 유통시세에 따라 매번 가격을 정하는 구조가 아니다. 철강사와 완성차업체가 직접 가격과 공급조건을 협상하고, 가공센터와 1차 협력사는 배정받은 소재를 정해진 요율에 따라 가공·납품한다.

따라서 가공센터의 핵심 위험은 소재가격 등락만이 아니다. 완성차 생산계획 축소로 가공량이 줄거나 출고가 순연되고, 소량 분할작업과 긴급 대응이 늘어날 경우 사급 단가가 유지돼도 수익성은 악화될 수 있다.

일반 유통재가 자동차 부품업체로 공급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계약물량 부족이나 긴급 생산, 미계약 규격을 보완할 때 제한적으로 사용되며, 가격은 사급 기준과 유통가격, 품질승인 및 긴급 가공비 등을 종합해 결정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회사와 인물은 모두 허구다. 자동차강판의 직접계약과 사급 가공, 유통재 보완조달 등 시장 구조를 토대로 재구성했다.


다음 회 예고

《강철의 계절⑥》 108만 원짜리 지붕

자동차용 강판이 장기계약과 사급 체계로 움직이는 동안 일반 냉연·도금강판 유통시장에서는 전혀 다른 협상이 벌어진다.

건축 외장재업체는 용융아연도금강판 가격이 톤당 107만~108만 원에 머물자 필요한 물량만 나눠 사겠다고 통보한다. 산업기계업체도 냉연강판 95만 원이 부담스럽다며 추가 할인을 요구한다.

유통업체 창고에는 기존 저가 재고와 제조사 인상 이후 입고된 신규재가 함께 쌓여 있다. 저가 재고가 남아 있는 동안에는 현재 가격을 유지할 수 있지만, 그 물량이 소진되면 같은 가격으로는 마진을 확보하기 어렵다.

자동차 사급시장과 달리 가격을 지켜줄 장기계약은 없다.

제조사는 올리라고 하고, 수요업체는 기다리겠다고 한다. 냉연도금 유통업체는 거래량과 마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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