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싸울 때와 싸우지 않을 때를 아는 자가 이긴다.” 손자병법 「모공(謀攻)」 편에 나오는 문장이다. 원문은 ‘知可以戰與不可以戰者勝’이다. 손자가 강조한 것은 용맹함 자체가 아니라 판단이었다. 이길 조건이 갖춰졌을 때 힘을 쓰고, 조건이 불리할 때는 자원을 보존하는 능력이 승패를 가른다는 뜻이다.
2026년 9월의 글로벌 철강시장에는 이 오래된 원칙이 낯설지 않다. 중국 제철소의 수익성은 크게 악화됐고, 세계 철강 수요는 올해 사실상 정체에 가까운 증가율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설비는 여전히 돌아가고 원료 가격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이런 시장에서 생산 효율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많이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라 ‘지금 이 물량을 만들어야 하는가’다.
| 지표 | 최근 확인치 | 의미 | 출처 |
|---|---|---|---|
| 2026년 세계 철강수요 전망 | 17억2,400만톤, 전년 대비 +0.3% | 글로벌 수요는 바닥을 다지지만 강한 회복은 아님 | 세계철강협회 |
| 중국 제철소 수익성 | 조사 제철소 중 7.8%만 흑자 | 높은 원료비와 약한 제품가격으로 마진 압박 심화 | Mysteel 인용 시장자료 |
| 중국 HRC 선물 | 3,308위안/톤, 9월 21일 | 소폭 반등했지만 공급은 충분하고 거래는 평균 수준 | SMM |
| 중국 일평균 용선 생산 | 239만9,100톤, 전주 대비 3,700톤 감소 | 적자 확대에 일부 제철소 정비·감산 증가 | SMM 기반 시장자료 |
| 튀르키예 스크랩 선물 | 391.5달러/톤 CFR 공식 종가 | 완제품 수요가 약해도 전기로 원료비는 높은 수준 | LME 연계 시장자료 |
손자가 말한 ‘싸우지 않을 때’는 철강에서 생산을 줄일 때다
철강업은 대표적인 장치산업이다. 고정비가 크기 때문에 설비를 많이 돌릴수록 단위당 원가가 낮아진다는 유혹이 강하다. 그러나 수요가 부족한 시기에 가동률을 높이면 생산원가가 낮아지는 대신 재고가 쌓이고, 유통가격이 내려가며, 결국 할인 판매와 운전자금 부담이 동시에 커진다. 공장 안의 효율이 회사 전체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역설이 생긴다.
중국 시장이 지금 그 문제를 보여준다. 9월 중순 조사에서 흑자를 내는 제철소 비중은 7.8%까지 낮아졌다. 높은 코크스 비용과 약한 제품가격이 마진을 압박했고, 일부 제철소는 정비를 늘리며 용선 생산을 줄였다. 9월 21일 열연 선물은 3,308위안/톤으로 소폭 올랐지만 SMM은 공급이 여전히 비교적 충분하고 거래가 평균 수준에 그쳤으며, 국경절을 앞둔 뚜렷한 재고보충 수요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가격의 하루 반등보다 수익성·재고·주문 흐름이 더 중요한 이유다.
원료는 버티는데 완제품 수요가 약하면 ‘많이 만드는 능력’이 약점이 된다
철광석과 스크랩도 제철소가 원하는 만큼 빠르게 내려오지 않는다. 중국의 용선 생산이 줄고 있음에도 철광석은 90달러대 중후반에서 버티는 구간이 이어졌고, 전기로 원료의 대표 지표인 튀르키예 스크랩도 390달러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원료비는 하락이 제한적인데 완제품 가격을 올리기 어렵다면 생산량을 늘릴수록 절대 이익이 늘어난다는 공식은 작동하지 않는다.
세계철강협회가 2026년 글로벌 철강수요를 17억2,400만톤, 전년 대비 0.3% 증가로 전망한 것도 같은 메시지를 준다. 시장이 무너지는 국면은 아니지만 설비를 공격적으로 확장해도 자연스럽게 흡수될 만큼 수요가 강한 시장도 아니다. 지역별 격차는 더 크다. 인도처럼 소비가 성장하는 시장이 있는 반면 중국은 구조적 수요 둔화를 겪고 있고, 유럽은 경기와 통상규제로 수입·재고 결정이 보수적이다. ‘글로벌 평균’만 보고 생산을 늘리는 전략은 점점 위험해지고 있다.
한국 철강사에도 필요한 것은 ‘생산성’보다 ‘선택성’이다
한국 철강업계는 내수 부진과 수출 규제, 환율 변동을 동시에 맞고 있다. 설비 효율과 원가 절감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수익성이 회복되지는 않는다. 수요가 약한 품목을 가장 효율적으로 대량 생산해 창고에 쌓는다면 재고자산과 금융비용만 커질 수 있다. 반대로 가동률을 낮추더라도 주문이 확인된 품목과 시장에 생산을 집중하면 톤당 공헌이익과 현금흐름은 더 좋아질 수 있다.
특히 수출에서는 지역별 ‘싸울 시장’을 구분해야 한다. 관세·쿼터·탄소규제가 높은 지역에서 단순 가격 경쟁으로 물량을 유지하려 하면 매출은 남아도 이익이 사라질 수 있다. 반면 인증, 납기, 고급강종, 현지 서비스에서 우위가 있는 시장이라면 물량이 작더라도 높은 마진을 확보할 수 있다. 손자의 말처럼 모든 시장에서 싸우는 기업보다 이길 수 있는 시장을 고르는 기업이 자본을 오래 보존한다.
경영진이 점검할 다섯 가지
첫째, 가동률 대신 주문별 공헌이익을 본다. 설비 이용률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생산을 정당화하지 말고 원료·에너지·물류·금융비용을 뺀 실제 수익을 주문 단위로 계산해야 한다.
둘째, 품목별 ‘생산 중단선’을 미리 정한다. 가격, 재고일수, 주문잔고가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감산하거나 정비에 들어갈지 사전에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시장이 나빠진 뒤 회의를 시작하면 항상 늦다.
셋째, 원료 구매를 생산계획이 아니라 판매계획과 연결한다. 싸게 보이는 원료를 먼저 사놓고 제품을 밀어내는 방식은 약한 수요에서 재고를 이중으로 늘릴 수 있다.
넷째, 재고의 ‘톤수’보다 나이를 본다. 같은 10만톤이라도 30일 이내 판매 가능한 재고와 90일 이상 묶인 재고의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장기재고는 가격 하락 위험과 금융비용을 함께 키운다.
다섯째, 수출시장마다 철수 기준도 정한다. 관세·운임·환율·결제조건을 반영한 뒤 수익성이 기준 이하로 떨어지는 시장에서는 물량 목표를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시장점유율을 지키는 것과 기업가치를 지키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멈춤’은 패배가 아니라 자원의 재배치다
손자가 말한 ‘싸우지 않을 때’는 겁을 먹고 후퇴하라는 뜻이 아니다. 더 중요한 싸움을 위해 병력을 보존하고, 유리한 조건을 기다리고, 승산이 높은 곳에 힘을 집중하라는 전략이다. 철강 경영에서도 감산, 주문 선별, 저수익 시장 철수는 실패의 신호가 아니라 자본 배분의 선택일 수 있다.
2026년의 철강시장은 수요가 완전히 꺾인 시장도, 모든 설비를 풀가동해도 되는 시장도 아니다. 바로 이런 중간지대에서 경영 판단의 차이가 커진다. 생산기술이 비슷하고 원료를 같은 국제시장에서 사는 기업이라도 무엇을 만들지, 무엇을 만들지 않을지, 어느 시장에서 싸울지를 더 빨리 결정하는 기업이 현금과 마진을 지킨다. 지금 철강업이 배워야 할 경쟁력은 ‘더 많이 만드는 능력’과 함께 ‘제때 멈추는 능력’이다.
명언 출처: 손자병법 「모공(謀攻)」. 원문 ‘知可以戰與不可以戰者勝’은 승리의 다섯 조건 가운데 첫 번째 원칙으로 제시된다.
시장 출처: 세계철강협회 2026년 4월 단기전망, SMM, Mysteel 인용 시장자료, LME 연계 시장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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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요약: 손자병법의 ‘싸울 때와 싸우지 않을 때를 아는 자가 이긴다’는 원칙을 수요 정체와 제철소 수익성 악화가 겹친 글로벌 철강시장에 적용했다. 설비 가동률과 생산량보다 주문별 공헌이익, 재고 회전, 감산 기준과 시장 선택이 기업의 현금흐름과 마진을 좌우하는 국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