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9월 24일 (목)
누적 방문자 164,875
일일 방문자 1,180
~

[철의 산책] 더 많이 만들수록 가난해지는 시장

석양의 대형 제철소와 넓은 철강재 야적장에 코일·후판·철근이 가득 쌓여 있는 모습

철강시장이 어려워질 때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은 대개 “조금이라도 더 팔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장은 멈추기 어렵고, 고정비는 기다려주지 않으며, 영업조직은 매출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수요가 약할수록 생산은 그대로인데 가격만 낮아지는 이상한 장면이 반복된다. 창고에는 코일과 철근이 늘고, 거래처에는 더 긴 결제조건이 붙고, 매출은 유지돼도 현금은 늦게 들어온다.


요즘 글로벌 철강시장이 다시 이 오래된 질문 앞에 서 있다. 중국에서는 주요 철강사들이 실제 주문과 수익성을 기준으로 생산과 재고를 조절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국내 업계가 이를 반기는 이유도 단순하다. 세계 최대 생산국이 수요와 무관하게 물량을 밀어내면 그 압력은 결국 수출시장과 한국 유통시장까지 흘러들어오기 때문이다.


이 장면을 보다 보면 이솝 우화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떠오른다. 농부는 매일 하나씩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얻었다. 기다리면 꾸준히 부를 얻을 수 있었지만, 그는 한꺼번에 더 많은 황금을 얻고 싶어 거위의 배를 갈랐다. 결과는 누구나 안다. 황금알도 사라지고 거위도 잃었다.


철강산업에서 거위는 설비일 수도 있고, 시장일 수도 있으며, 거래처와 신용일 수도 있다. 당장 한 톤을 더 만들고 한 건의 주문을 더 잡는 것이 항상 이익은 아니다. 수요가 없는 시장에서 생산량을 늘리면 판매가격이 먼저 무너지고, 그 다음에는 재고평가손실과 금융비용이 따라온다. 결국 공장을 돌려 고정비를 줄이려던 판단이 회사 전체의 현금흐름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공장을 멈추는 결정이 생산보다 어려운 이유

제철소와 제강사는 설비산업이다. 가동률이 떨어지면 톤당 고정비 부담이 올라간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일단 돌리고 팔자”는 유혹이 강하다. 그러나 수요가 충분하지 않으면 가동률을 지키는 대신 가격을 희생하게 된다. 판매단가 하락이 원가 절감 효과보다 크다면 높은 가동률은 효율이 아니라 손실의 확대가 된다.


이때 필요한 것은 생산기술보다 경영의 절제다. 주문, 재고, 현금흐름, 원재료 가격, 수입재 움직임을 함께 보고 생산량을 결정해야 한다. 특히 유통시장 재고가 높은 상황에서는 제철소가 한 번 더 출하한 물량이 시장가격을 누르고, 그 가격 하락이 다시 유통업체의 손실과 구매 지연으로 돌아오는 악순환이 만들어진다.


ADVERTISEMENT

재고는 철이 아니라 시간과 돈이다

철강 유통업체가 보유한 재고는 창고에 쌓인 제품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매입 당시의 환율, 운임, 이자비용, 여신기간, 앞으로 받을 돈까지 들어 있다. 가격이 떨어지면 재고는 단순히 평가손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음 매입 여력을 줄인다. 팔기 위해 더 긴 외상을 주면 현금회전은 더 느려진다.


그래서 철강시장에서 ‘많이 팔았다’와 ‘잘 팔았다’는 같은 말이 아니다. 회전이 느리고 마진이 없는 매출은 회사의 체력을 소모한다. 영업부서는 톤수를 보고, 구매부서는 낮은 매입가를 보고, 재무부서는 현금을 본다. 세 부서가 서로 다른 숫자만 보면 거위를 살리는 대신 황금알 개수만 세게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산보다 ‘기준’이다

물론 생산을 줄인다고 시장이 자동으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공급 조절이 일시적인 이벤트에 그치고 수요가 회복되지 않으면 가격 반등도 오래가기 어렵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생산과 판매를 조절하느냐다. 실제 주문이 늘었는지, 유통재고가 줄고 있는지, 제품별 마진이 회복되는지, 거래처의 결제가 정상적으로 돌아오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최근 글로벌 철강시장은 과잉설비와 약한 수요, 그리고 통상장벽이 동시에 겹친 구조다. OECD도 세계 철강시장의 초과설비 문제가 다시 심화될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얼마나 많이 만들 수 있는가’보다 ‘얼마나 적절하게 만들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


철강업의 숙련은 뜨거운 쇳물을 다루는 기술에만 있지 않다. 시장이 식을 때 생산을 낮추고, 재고를 줄이며, 가격보다 현금을 지키는 판단에도 숙련이 필요하다. 황금알을 오래 얻고 싶다면 거위를 먼저 살펴야 한다. 오늘 철강회사가 지켜야 할 거위는 설비가 아니라 수익성과 현금흐름일지도 모른다.


자료: OECD Steel Outlook 2026, 중국철강협회(CISA) 관련 공개자료, SMM / 철강정보원 재구성·분석

ADVERTISEMENT
RECOMMENDED CONTENT
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