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비금융부문 부채는 2026년 2분기 말 84조1,000억달러에 달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금융계정 기준으로 GDP의 259%다. 총량만 보면 1990년 일본 버블 당시보다 작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 미국 경제는 현재 일본식 대차대조표 불황에 빠져 있지 않다.
이유는 부채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1990년 일본은 기업부채가 문제의 중심이었고, 현재 한국은 가계부채 부담이 크다. 미국은 가계와 기업도 막대한 부채를 갖고 있지만 최근 가장 빠르게 커지는 위험은 정부부채다. 미국의 부채 문제는 “민간이 빚을 갚느라 소비와 투자를 멈추는 경제”보다 “정부가 계속 국채를 발행하면서 장기금리를 높게 만드는 경제”에 가깝다.
84조달러 부채…미국은 정부 비중이 가장 크다
연준에 따르면 2026년 2분기 미국 비금융부문 부채 84조1,000억달러 가운데 가계가 21조4,000억달러, 비금융기업이 24조달러, 연방·주·지방정부가 38조7,000억달러다. 같은 시기 명목GDP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가계부채는 GDP의 약 66%, 비금융기업 부채는 약 74%, 정부부채는 약 119% 수준이다.
| 구분 | 일본 1990년 전후 | 미국 2026년 | 한국 최근 |
|---|---|---|---|
| 가계부채/GDP | 약 34% | 약 66% | 80%대 중후반 |
| 기업부채/GDP | 대출 111%+채권성 조달 | 약 74% | 100% 이상 |
| 정부부채/GDP | 약 70% | 약 119% 수준 | 미국·일본보다 낮음 |
| 핵심 부채주체 | 기업 | 정부 | 가계+기업 |
| 주요 충격경로 | 기업투자 감소 | 장기금리·재정이자 부담 | 가계소비 감소 |
미국 가계부채가 절대금액으로는 막대하지만 GDP 대비 비율은 한국보다 낮다. 연준은 2026년 5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미국 가계의 전반적인 대차대조표가 여전히 견조하고, 대부분의 부채가 신용도가 높은 차주에게 집중돼 있으며 주택담보대출 연체율도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가계는 왜 금리 상승 충격을 상대적으로 덜 받나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구조도 한국과 다르다. 장기 고정금리 모기지 비중이 높기 때문에 저금리기에 30년 고정금리 대출을 받은 기존 주택보유자는 시장금리가 상승해도 대출금리가 즉시 재조정되지 않는다. 금리 인상의 충격은 신규 주택구입자와 신규 차입자에게 집중된다.
한국처럼 기준금리와 은행 조달금리 변화가 기존 주택대출의 원리금 부담으로 빠르게 전가되는 구조와 차이가 있다. 따라서 연준이 금리를 올려도 미국 가계 전체가 동시에 소비를 줄이는 대차대조표 불황으로 바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연방정부…2026년 적자 1.9조달러
미국의 핵심 위험은 정부 쪽에서 커지고 있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2026회계연도 연방정부 재정적자를 1조9,000억달러, GDP의 5.8%로 전망했다. 시장이 보유한 연방정부 부채는 2026년 GDP의 101%에서 2036년 120%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더 큰 문제는 이자비용이다. CBO는 순이자지출이 2026년 GDP의 3.3%에서 2036년 4.6%로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1~2%대 금리로 발행한 국채가 만기를 맞고 4~5%대 금리로 차환될수록 정부의 평균 조달비용은 천천히 올라간다.
부채가 많을수록 금리가 오르고, 금리가 오를수록 이자비용이 늘며, 늘어난 이자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다시 국채를 발행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연준이 금리를 내리지 않아도 장기금리가 높게 남을 수 있다
이 점에서 미국 정부부채 문제는 기준금리와 분리해 봐야 한다. 연준은 9월 16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려 3.75~4.00%로 조정했다. 그러나 9월 25일 미 재무부 공식 수익률곡선에서 10년물은 5.17%, 30년물은 5.49%를 기록했다.
장기금리가 기준금리보다 높은 것은 시장이 장기 인플레이션, 재정적자, 국채 공급 증가와 기간 프리미엄을 반영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연준이 추가 인상을 하지 않더라도 국채 발행 부담과 재정 불확실성이 계속되면 10년물 금리가 과거보다 높은 수준에 머무를 가능성이 있다.
미국 부채 문제는 한국에 ‘높은 금리’로 수출된다
미국은 달러라는 기축통화를 발행하고 세계 최대 국채시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이나 신흥국처럼 외화부족으로 지급불능에 빠질 위험은 상대적으로 낮다. 미국 정부부채의 제약은 외환위기보다 인플레이션과 금리에 가깝다.
문제는 미국 국채금리가 세계 금융시장의 기준금리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미 10년물이 5%대에 머물면 글로벌 투자자는 높은 수익률의 달러자산을 선택할 수 있다. 이는 달러 강세와 원화 약세 압력으로 연결되고 한국 국고채와 은행 조달금리에도 영향을 준다.
미국 재정적자 확대 → 국채 발행 증가 → 미 장기금리 상승 → 달러 강세 → 원·달러 환율 상승 → 한국 시장금리 상승 → 한국은행 금리인하 제약이라는 연결고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
한국이 가계부채를 부드럽게 줄이려면 소득이 늘고 금리는 점차 낮아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미국 정부부채 때문에 글로벌 장기금리가 높은 수준에 고착되면 한국은 내수가 약해져도 금리를 충분히 낮추기 어려워질 수 있다. 미국의 정부부채 문제가 한국의 가계부채 조정을 어렵게 만드는 구조다.
철강업계에는 ‘원가는 오르고 수요는 약해지는’ 이중 압력
미국 장기금리 상승이 달러 강세와 원화 약세로 이어지면 한국 철강업계의 수입원료 비용이 높아진다. 철광석, 원료탄, 스크랩, 합금철, 전극봉과 각종 수입 설비·부품의 원화 환산가격이 상승한다.
반면 고금리는 건설·자동차·기계·설비투자의 자금조달 비용을 높여 철강 수요를 약화시킨다. 철강사와 제강사 입장에서는 원료비 상승을 제품가격에 충분히 전가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유통업계의 부담은 더 직접적이다. 재고 100억원을 차입으로 조달한다고 가정할 때 금리가 4%에서 6%로 상승하면 연간 금융비용은 4억원에서 6억원으로 2억원 늘어난다. 판매마진이 얇은 철강 유통사업에서는 재고회전일수 몇 주의 차이가 손익을 크게 바꿀 수 있다.
따라서 미국 정부부채의 증가는 철강업계와 무관한 워싱턴의 재정 문제가 아니다. 미국 국채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시키면 환율, 원료가격, 재고금융비와 국내 철강수요를 동시에 움직이는 외부변수가 된다.
미국이 무너지는가보다 ‘미국 금리가 얼마나 오래 높은가’가 중요
미국의 현재 상황을 일본 버블 붕괴와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가계와 기업의 대차대조표가 상대적으로 양호하고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 깊은 자본시장과 높은 생산성이 완충장치로 작용한다.
그러나 정부부채가 계속 증가하면서 장기금리가 높은 수준에 고착될 경우 미국 경제뿐 아니라 전 세계가 그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한국에는 특히 민감하다. 높은 가계부채를 가진 한국이 필요한 것은 낮은 금리와 긴 조정시간인데, 미국의 정부부채가 바로 그 시간을 허용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회에서는 이 연결고리를 현재 시장에 적용한다. 미국 10년물 5%대가 지속되고 원·달러 환율이 다시 상승할 경우 한국은행의 추가 금리조정이 왜 부동산과 가계부채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자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미 재무부, 미 의회예산국(CBO), BIS, IMF,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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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의 역습②] 일본은 기업이 빚졌고 한국은 가계가 빚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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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의 역습⑤] 소비가 사라지고 빚만 갚는 경제…한국도 일본의 길로 가나